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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서사 구조, 보호 본능, 실존적 자아)

by 이초록 Chorock 2026. 6. 18.

이초록의 영미문학적 삶- 그녀를 지키다 장 바티스트 앙드레아 손글씨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소설을 잘못 읽었습니다. 600페이지짜리 장편을 손에 쥐고 단순한 러브 스토리를 기대했는데, 읽고 나서야 이게 누군가를 '지킨다'는 행위 자체를 해부한 소설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스물다섯의 저에게 꽤 불편한 방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서사 구조가 던지는 첫 번째 신호

장 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소설 『그녀를 지키다』는 1986년, 한 수도원에서 임종을 앞둔 노인의 시점으로 시작합니다. 수도사들이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가운데, 죽은 줄 알았던 그가 갑자기 눈을 뜨고 입을 달싹입니다. 그 문장으로 첫 챕터가 끝나고, 다음 챕터의 첫 문장은 "물론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하고 있다"로 시작됩니다. 제가 이 도입부를 처음 읽었을 때, 이건 단순한 액자식 구성이 아니라는 느낌이 바로 들었습니다.

소설은 현재(1986년 수도원)와 과거(1904년부터 수십 년)가 교차하는 시간적 병치(temporal juxtaposition) 구조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시간적 병치란 서로 다른 시간대를 교대로 배치해 현재의 결말이 과거 서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독자가 능동적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서술 기법입니다. 각 챕터 말미의 문장이 다음 이야기에 대한 단서를 살짝 흘리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저는 세미나 준비를 하면서도 다음 챕터가 궁금해 책을 덮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반적으로 공쿠르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난해하고 내향적인 실험 소설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소설은 오히려 고전적인 서사미에 훨씬 가깝습니다. 190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주인공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 줄여서 미모가 열두 살에 홀로 이탈리아로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해, 석공 견습생으로 살아가면서 귀족 가문의 딸 비올라를 만나는 장면까지, 이야기의 흡입력은 전혀 실험적이지 않습니다. 그 공쿠르상 수상 이력은 오히려 이 소설의 문학적 완성도를 공인하는 쪽으로 읽는 게 맞습니다(출처: Académie Goncourt).

보호 본능 뒤에 숨은 것

제가 이 소설을 세미나 텍스트로 다루면서 가장 오래 붙잡고 씨름했던 부분은 제목 자체였습니다. 그녀를 지키다, 여기서 '그녀'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소설 속 미모는 비올라를 평생의 기준점으로 삼고 삽니다. 그런데 비올라는 정작 '지켜져야 할'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10대 시절에는 비올라가 미모에게 세상을 열어 보이는 쪽이었습니다. 지식에 대한 왕성한 욕구, 날개를 만들어 날고 싶다는 꿈, 무덤가에 누워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자유로운 영혼. 이런 비올라에게 미모는 압도됩니다.

이 관계에서 작동하는 심리적 기제를 세미나에서는 대타자(Other)의 기표(Signifier)라는 개념으로 분석했습니다. 여기서 대타자란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에서 개인의 욕망 구조를 규정하는 상징적 타자, 즉 언어나 사회 규범 같은 외부 질서를 의미합니다. 기표란 그 질서 안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인데, 미모에게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명령은 자신의 외소증 콤플렉스와 사회적 열패감을 은폐하려는 내면의 기표로 기능합니다. 쉽게 말해, 비올라를 지키겠다는 선언이 실은 비올라를 필요로 하는 자신의 결핍을 가리는 장치라는 겁니다.

저도 당시 스물다섯의 관계 경험과 겹쳐 보면서 꽤 불편했습니다. 누군가를 책임지겠다는 의무감이 정작 그 상대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불안을 관리하기 위한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 소설이 가차 없이 짚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지키다』에서 이 구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비올라가 16살 생일에 날개를 달고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비올라는 미모의 보호를 원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직접 실행합니다.
  • 8년의 이별 동안 미모가 편지를 보내고 비올라가 단 한 번만 답장하는 장면: 그 답장의 내용이 "더 이상 편지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 파시즘이 이탈리아를 잠식하는 시기에 정치적 신념 없이 수주를 이어가는 미모와, 확고한 저항 의지를 가진 비올라의 대비.

관계 서사 연구에서 이런 비대칭적 의존 구조는 심리적 공생(psychological symbiosis)과 구별되는 것으로, 공생이 상호적 의존이라면 이 소설이 그리는 것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대를 자신의 정체성 기반으로 삼는 형태입니다(출처: 한국문학번역원).

실존적 자아로서 읽을 때 보이는 것

소설이 뒤로 갈수록 미모의 이야기는 조각가로서의 성취와 개인적 파국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피렌체에서 조각 경력을 쌓으며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당과 가톨릭 교회 양쪽으로부터 수주를 받는 장면은, 예술가가 역사의 폭력 속에서 어떻게 정치적 무감각을 생존 전략으로 삼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소설에서 자코메티나 브란쿠시 같은 실제 20세기 조각가들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자코메티는 인간 존재의 고독과 불안을 가느다란 형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고, 브란쿠시는 형태의 본질만 남기는 극도의 단순화로 조각사를 바꾼 인물입니다. 이 두 작가의 미학적 지향, 즉 존재의 핵심을 형상 속에 응축하는 태도가 미모의 최후 작품인 피에타(Pietà) 제작과 연결되면서 소설의 주제를 마지막으로 집약합니다.

피에타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한 조각 또는 회화 형식을 말하며, 미켈란젤로가 24세에 제작한 바티칸의 피에타 상이 가장 유명한 사례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1972년 실제로 발생한 피에타 테러 사건, 즉 헝가리 출신 남성이 망치로 조각상을 훼손했던 일화가 등장합니다. 이 장면이 단순한 역사적 삽입이 아니라 미모가 평생 지키려 했던 무언가가 손상되는 메타포로 기능한다는 점을 저는 세미나 발표에서 강조했습니다.

1928년 6월 21일, 비올라와 10년 전에 약속했던 만남의 날이 불과 사흘 남은 날짜라는 걸 달력을 보다 문득 깨닫고 차를 몰아 무덤가로 달려가는 미모의 행동. 이 장면에서 저는 의무감과 그리움의 경계가 얼마나 흐릿한지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그게 사랑인지 집착인지 책임인지, 독자에게 그 판단을 떠넘기는 방식이 이 소설의 가장 정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장 바티스트 앙드레아는 원래 영화 감독 출신으로, 46세에 소설가로 전업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영화적 시각화에 최적화된 구성을 갖고 있는 건 그 배경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실제로 영화화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는 영화가 나오더라도 600페이지의 서사 밀도를 그대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불가능한 부분이 바로 이 소설을 소설로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그녀를 지키다』가 오래 남는 이유는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인간의 본능이 얼마나 쉽게 자기 보존의 언어로 미끄러지는지를, 800여 년을 아우르는 역사와 한 남자의 생애를 통해 조용히 증명해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소설을 학부 세미나에서 처음 다뤘을 때보다, 지금 다시 떠올릴 때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겁니다. 이 소설을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초반 100페이지의 느린 진입을 버텨내는 것을 권합니다. 비올라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책을 덮기 어려워질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yxjnkXw-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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