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퓰리처상 심사위원들이 "당선작 없음"을 선언하면서도 가장 아깝다고 꼽은 소설이 있습니다. 데니스 존슨의 『기차의 꿈』입니다. 저는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전공하던 스물다섯에 이 소설을 원전으로 처음 읽었고, 그날 밤 강의실에서 느꼈던 서늘함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서부 개척 신화의 이면, 이름 없는 노동자의 궤적
소설의 배경은 20세기 초 미국 서부, 급격한 산업화가 대륙을 뒤흔들던 시기입니다. 주인공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고아 출신으로 아이다호의 숲에 보내져 철도 노동자와 벌목꾼으로 살아갑니다. 협곡을 가로지르는 철도 교량을 놓고, 거대한 증기 엔진으로 통나무를 운반하는 노동의 현장이 소설 앞부분을 가득 채웁니다.
제가 직접 원전을 읽어보니, 이 장면들에서 데니스 존슨이 구사하는 서술 방식이 독보적이었습니다. 감탄사 하나 없이 노동의 물리적 디테일만 차갑게 쌓아가는데, 그 건조함이 오히려 독자를 압도합니다. 그레이니어가 다리 개통 행사에서 다른 남자들과 함께 환호를 지르면서도 속으로는 "슬픈 기분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고 느끼는 장면에서, 저는 읽다가 잠시 멈췄습니다. 그 짧은 문장 하나가 소설 전체의 정서를 압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 소설이 해체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바로 서부 개척 신화(Frontier Myth)입니다. 서부 개척 신화란 미국이 서쪽으로 팽창하면서 영웅적 개인이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을 건설했다는 이데올로기적 서사를 말합니다. 카우보이, 금광, 성공한 개척자의 이미지가 그 전형이지요. 하지만 소설 속 현실은 다릅니다. 그레이니어처럼 이름도 기억도 남기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었고, 인종 차별의 폭력 속에서 혹사당한 중국인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세미나 준비를 하면서 이 지점에서 꽤 오래 멈춰 생각했습니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가 어떤 성취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는 나이인데, 그레이니어의 삶은 그 달음질 자체가 얼마나 공허할 수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레이니어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맥락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 문학사에서 이처럼 익명의 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운 서사 기법은 리얼리즘 문학(Realism)의 핵심 전통에 닿아 있습니다. 리얼리즘이란 사회 구조와 역사적 현실을 미화 없이 재현하는 문학적 방법론을 의미하는데, 데니스 존슨은 여기에 환상성(Fantastique)을 교묘하게 섞어 넣습니다. 환상성이란 현실과 초자연적 요소가 경계 없이 뒤섞이는 서술 방식으로, 독자가 어느 순간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를 판단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이 혼합이 『기차의 꿈』을 단순한 역사 소설과 다른 자리에 세워 놓습니다.
『기차의 꿈』이 보여주는 서부 개척 시대의 노동 현장을 이해하는 데, 미국 사회사 연구들이 도움이 됩니다. 20세기 초 철도 건설 현장의 노동 조건과 이민 노동자 착취 실태는 역사적으로 광범위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실존적 고독과 상실의 미학,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1920년, 그레이니어가 서른여덟 살 때 산불이 그의 마을 전체를 집어삼킵니다. 아내 글래디스와 딸 케이트는 시신조차 찾을 수 없이 사라집니다. 그는 잿더미 위에 오두막을 짓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 선택이 소설의 두 번째 축을 이룹니다. 저는 처음 읽을 때 이 부분에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인물이라면 새 삶을 찾아 떠나거나, 아니면 철저히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레이니어는 그냥 그 자리에 머뭅니다.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이 장면부터 소설은 정신분석학적(Psychoanalytic) 독해의 층위를 열어젖힙니다. 정신분석학적 비평이란 인물의 행동과 언어 너머에 있는 무의식적 욕망과 억압, 방어기제를 분석하는 문학 비평 방법론을 말합니다. 저는 발표 준비 당시 강의 노트에 그레이니어의 고독을 이 관점에서 해부했는데, 그의 은둔이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상실을 내면화하여 버티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로 읽힌다는 점에 세미나 내내 열띤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방어기제란 견딜 수 없는 심리적 고통을 무의식이 완충시키기 위해 작동시키는 심리적 전략을 가리킵니다.
그 고독 속에서 글래디스의 유령이 출현하고, 늑대와 함께 사는 소녀가 나타납니다. 이 장면들이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그레이니어의 내면 풍경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점을 직접 원전을 읽어봐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유령이 "슬퍼하고 있었다"는 문장을 읽는 순간, 슬퍼하는 것은 글래디스가 아니라 그레이니어라는 사실이 피부로 전해져 옵니다.
소설이 보여주는 자연 또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부 개척 서사에서 자연은 인간이 극복해야 할 대상, 즉 생태주의 비평(Ecocriticism) 용어로 말하면 '타자화된 자연'입니다. 생태주의 비평이란 문학 텍스트 안에서 인간과 자연 환경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비평 이론을 의미하는데, 이 시각에서 보면 그레이니어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산불이라는 자연이 앗아갔음에도 그가 끝내 그 자연 속에서 살다 죽는다는 결말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화해처럼 읽힙니다.
그레이니어의 삶에서 기차는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옵니다. 어린 시절 그를 아이다호로 데려온 것도 기차였고, 말년에 잠들면 꿈속에서 기차 소리가 들립니다. 기차가 상징하는 문명과 진보는 그의 삶을 관통했지만, 그에게 남긴 것은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고독과 상실이었습니다.
이 소설이 퓰리처상 수상에서 제외된 이유는 중편 소설이라는 분량의 문제였지만, 문학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꾸준히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데니스 존슨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해서는 미국 문학 연구의 주요 아카이브인 출처: 미국현대어문학회(MLA)에서 관련 학술 논문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차의 꿈』이 지닌 핵심 매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서부 개척 신화를 철도 노동자의 시선으로 해체하는 역사적 비판
-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지우는 독특한 서사 기법
- 상실 이후 싸우지 않고 침묵 속에 머무는 주인공의 비범한 내면
-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인간과 공존하는 존재로 그리는 생태적 시각
제 경험상 이 소설은 처음 읽을 때보다 다 읽고 나서 며칠 뒤에 더 진하게 남는 작품입니다. 그레이니어가 조용히 극장에서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장면, 그리고 기차 경적 소리와 늑대 울음 소리로 끝나는 마무리가 뒤늦게 가슴을 건드립니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의 빌 펄롱이 부조리 앞에서 문을 열고 나간 사람이라면, 그레이니어는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어느 쪽이 더 용감한지는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소설은 "버티는 것도 하나의 삶"이라는 사실을 조용하고 단호하게 증명합니다. 서부 개척의 화려한 신화에 가려진 이름들을 기억하고 싶다면, 이 얇은 소설 한 권이 그 어떤 두꺼운 역사서보다 더 깊은 자리까지 닿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