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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예술가 소설, 실존적 해방, 쿤스트레로만)

by 이초록 Chorock 2026. 5. 20.

이초록의 영미문학적 삶-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손글씨

증권 브로커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마흔 살의 남자가 어느 날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떠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출발점입니다. 저는 영문학 전공 수업에서 이 작품을 처음 원전으로 읽었을 때, 단순한 예술가의 일탈 서사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예술가 소설(쿤스트레로만)의 계보와 스트릭랜드의 위치

쿤스트레로만(Künstlerroman)이란 예술가의 내면적 성장과 창작적 각성을 중심 서사로 삼는 소설 양식입니다. 쉽게 말해 예술가가 어떻게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고 세상과 충돌하는지를 추적하는 장르입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나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가 대표적인 예인데, 몸의 [달과 6펜스]는 이 계보 안에서도 상당히 파격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일반적인 쿤스트레로만의 주인공들은 사회와 갈등하면서도 어느 정도 화해의 여지를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찰스 스트릭랜드는 다릅니다. 그는 타협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합니다. 저는 이 지점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인물이지만, 그 비난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묘하게 끌어당깁니다.

서머싯 몸은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화가 폴 고갱의 삶에서 스트릭랜드의 원형을 가져왔습니다. 후기 인상주의란 인상주의의 즉흥적인 빛의 표현에서 한발 더 나아가, 화가 개인의 내면과 상징성을 강하게 담아내는 사조입니다. 고갱처럼 스트릭랜드도 증권업을 그만두고 타히티로 건너가 원시적인 삶 속에서 그림을 그리다 죽습니다. 몸이 이 실존 인물에서 소설적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은 문학비평 자료에서도 폭넓게 확인됩니다(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가 이 작품을 분석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스트릭랜드의 언어였습니다.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이 대사를 강의 노트에 받아 적으면서, 당시 취업 준비와 졸업 논문 사이에서 허우적대던 저 자신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 순간 이 소설이 단순히 분석해야 할 텍스트가 아니라, 저한테 무언가를 묻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트릭랜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또 다른 축은 화자인 '나'의 시선입니다. 화자는 철저한 합리주의자이자 관찰자로서, 스트릭랜드의 파멸적 행보를 감정이입 없이 기록합니다. 이 건조한 서술 방식이 오히려 스트릭랜드의 광기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효과를 냅니다. 몸이 선택한 이 서술 전략은 문학비평 용어로 신뢰할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 기법과는 반대로, 지나치게 냉정한 화자가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더 깊은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스트릭랜드를 둘러싼 주요 인물들의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스트릭랜드 부인: 6펜스의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 남편의 부재를 케임브리지 아들과 집안 내력으로 덮으려 한다.
  • 더크 스트로브: 자신은 재능 없는 화가이지만, 천재성을 알아보는 심미안을 가진 비극적 인물.
  • 아타: 타히티 원주민 소녀로, 문둥병으로 눈이 먼 스트릭랜드 곁을 끝까지 지킨다.

실존적 해방 서사로 읽는 결말의 역설

정신분석학 비평(Psychoanalytic Criticism)의 시각에서 보면, 스트릭랜드가 런던의 가정과 사교계를 탈출하는 행위는 프로이트가 말한 이드(Id)의 해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드란 인간 내면의 원초적 욕동, 즉 사회화 이전의 본능적 충동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런던 사교계는 초자아(Super-ego), 즉 사회적 규범과 도덕이 인간의 원초적 충동을 억압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스트릭랜드는 그 억압 구조를 물리적으로 이탈함으로써 자신의 이드를 해방시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단순히 정신분석학적 도식으로만 읽는 것이 다소 아쉬웠습니다. 제 경험상 이 작품은 사회학적 비평(Sociological Criticism)의 렌즈로 함께 읽어야 훨씬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사회학적 비평이란 작품이 생산된 사회적 맥락과 계급, 권력 구조를 분석의 틀로 삼는 방법론입니다. 1919년, 1차 세계대전 직후라는 시점이 중요합니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전쟁이 남긴 허무주의 속에서 기존의 부르주아적 도덕 체계에 깊은 불신을 품고 있었고, 스트릭랜드의 탈출이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얻었던 배경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 기성 가치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활발해졌다는 점은 문학사 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출처: 옥스퍼드 문학 연구소).

스트릭랜드의 결말은 이 소설에서 가장 강렬한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타히티의 오두막 벽 전체에 생애 최후의 걸작을 완성하고, 아내 아타에게 자신이 죽으면 오두막을 불태우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아타는 그 유언을 그대로 따릅니다. 세속적 소유주의, 즉 작품을 소유하고 전시하고 가격을 매기는 6펜스의 논리를 그는 완성과 동시에 스스로 폭파해버린 것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완성된 걸작을 불태운다는 설정이 단순히 극적 장치가 아니라, 창작 행위 자체를 소유와 분리시키는 몸의 철학적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고, 그것이 세상에서 어떻게 평가받는지는 창작자에게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선언.

아이러니하게도 스트릭랜드가 죽고 나서 파리의 비평가들이 그의 천재성을 재발견하고, 그를 평생 이해하지 못했던 스트릭랜드 부인은 언론 앞에서 천재의 아내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소설은 막을 내립니다. 몸이 이 결말에 담은 풍자는 날카롭습니다. 달의 세계를 경험한 적도 이해한 적도 없는 사람들이, 달의 세계에서 불타오른 것의 값어치를 6펜스로 환산해 전시하는 구조를 그는 정확하게 해부해 놓았습니다.

[달과 6펜스]가 100년이 넘은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예술가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졸업을 앞두고 현실과 갈망 사이에서 번민하던 시절, 이 소설은 저에게 무엇이 진짜 굶주림인지를 묻는 질문지였습니다. 스트릭랜드처럼 모든 것을 던지고 살 수 없다 해도, 적어도 자신의 달이 무엇인지는 알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만큼은 지금도 확신합니다.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으셨다면, 원전 영문본이 부담스럽다면 한국어 번역본으로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6펜스를 좇느라 달을 잊고 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L54n3LE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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