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레미제라블 (법과 도덕, 자베르의 붕괴, 장발장의 집착)

by 이초록 Chorock 2026. 5. 22.

이초록의 영미문학적 삶-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손글씨

영문학 수업에서 처음 이 소설을 원서로 분석하던 날, 저는 솔직히 예상 밖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화로만 알고 있던 레미제라블이, 텍스트로 마주하니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빅토르 위고가 1862년에 완성한 이 작품은 단순한 감동 서사가 아니라, 법과 도덕 사이에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고 또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 소설입니다.

법과 도덕의 충돌, 그리고 자베르의 붕괴

제가 직접 강의 노트를 채워가며 가장 오래 붙들었던 인물은 사실 장발장이 아니라 자베르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악역처럼 보이는 이 경찰관이,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저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불편함의 정체를 이해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자베르는 실정법(Positive Law)의 화신입니다. 여기서 실정법이란 국가나 사회가 명문으로 제정한 법 규범을 뜻하며, 자연법이나 도덕적 정의와는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자베르에게 세상의 질서는 오직 이 실정법으로만 유지됩니다. 그래서 그는 장발장이 얼마나 변했든 간에, 빵 한 조각을 훔쳤던 과거의 죄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단죄받아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바리케이드 전투에서 장발장이 자베르를 풀어줍니다. 자베르의 입장에서 이건 단순한 자비가 아니라 세계관 자체를 흔드는 사건입니다. 자베르는 이 순간 응보주의(Retributivism)의 한계에 정면으로 부딪힙니다. 응보주의란 범죄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형벌 철학으로, 자베르의 모든 행동 원리를 지탱해온 근거였습니다. 그런데 죄인으로부터 자비를 받은 자신이, 그 죄인을 다시 법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저는 수업 중에 교수님이 이 장면을 두고 "자베르의 인식론적 붕괴"라고 표현했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인식론적 붕괴(Epistemic Collapse)란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근본 틀 자체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베르에게는 법이 곧 진리였는데, 그 법이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순간,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자베르가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법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 조금 다르게 읽었습니다. 자베르는 실정법도, 양심의 법도 어느 하나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이중의 실패 앞에 선 것입니다. 응보주의적 기질이 강한 사람일수록 스스로에게도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기 마련이고, 결국 자베르도 장발장처럼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자베르의 비극이 이 소설에서 핵심적인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실정법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은 세계관이 현실 앞에서 균열을 일으킴
  • 적을 통해 자비를 경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자기 존재 이유를 무너뜨림
  • 응보주의적 사고방식이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되어 자기 용서를 불가능하게 만듦
  • 법의 이성과 인간의 양심이 충돌할 때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한 정신적 교착 상태

장발장이 코제트에게 집착한 이유

제 경험상 이 부분은 소설을 읽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지점입니다. 장발장의 코제트에 대한 태도를 지나친 집착이라고 불편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관계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발장은 19년간의 노역(Forced Labor)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사람입니다. 여기서 노역이란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채 강제 노동에 복무하는 형벌을 말하며, 그 시간 동안 장발장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관계를 단절당했습니다. 미리엘 주교의 자비로 새 삶을 시작하게 된 그가,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적인 삶을 꾸려가면서도 내면에는 언제나 "나는 사실 죄인"이라는 뿌리 깊은 자기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코제트는 그런 장발장에게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닙니다. 첫째는 팡틴에 대한 약속입니다. 팡틴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마들렌 시장에게 딸을 맡겼습니다. 죄인인 자신을 죄인으로 보지 않고 신뢰를 보내준 팡틴의 마음을, 장발장은 배신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자기 구원의 증거입니다. 코제트 역시 장발장의 과거를 모른 채 그를 따릅니다. 그 순수한 신뢰 속에서 장발장은 자신이 진짜로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확인을 얻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서사적 자기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의 문제입니다. 서사적 자기 정체성이란 한 사람이 자신의 삶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자아를 형성해 간다는 개념으로, 심리학자 폴 리쾨르(Paul Ricœur)가 제안한 이론입니다.

마리우스가 코제트에게 접근하기 시작할 때 장발장이 보이는 과도한 방어 반응 역시, 단순한 소유욕이 아니라 자신의 구원 증거를 빼앗길 것 같은 실존적 공포였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이 구분이 소설 전체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위고가 이 소설에서 그려낸 사회 비판은 19세기 프랑스의 역사적 맥락과도 긴밀히 연결됩니다. 1832년의 6월 봉기는 라마르크 장군의 죽음이 촉매가 된 공화파 학생들의 봉기로, 왕정 복고에 저항한 실패한 혁명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하층민의 생존권이 어떻게 법의 이름으로 박탈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출처: 프랑스 국립도서관 BnF), 위고의 작품이 사회 비판 문학(Social Critical Literature)의 고전으로 분류되는 이유도 이 맥락에 있습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서사문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학술적 검토는 지금도 영문학·불문학 연구의 주요 테마로 남아 있습니다(출처: JSTOR 학술 데이터베이스).

결국 레미제라블은 법과 도덕 중 무엇이 옳은가를 묻는 소설이 아닙니다. 두 가지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를 묻는 소설입니다. 졸업과 진로라는 제도적 압박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던 시기에 이 소설을 읽었기 때문인지, 자베르의 붕괴보다 장발장의 느린 회복이 저에게는 훨씬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원작 소설이 부담스럽다면 뮤지컬이나 영화로 먼저 접근하는 것도 충분히 유효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위고가 직접 쌓아올린 문장들을 통해 이 인물들과 마주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ZShxwlzH2A&t=76s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이초록의 영미문학적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