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산책을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동의어로 오랫동안 여겼습니다. 특히 스물다섯, 졸업을 앞두고 하루하루 스펙을 쌓던 시절엔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로베르트 발저의 소설 『산책』을 읽고 난 뒤, 제가 얼마나 좁은 기준으로 '생산성'을 정의해왔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모더니즘 소설이 낯선 분께 — 발저가 먼저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더니즘 문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난해하다는 인상이 먼저 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꽤 다릅니다.
모더니즘(Modernism)이란 19세기 리얼리즘이 고수하던 거대 서사, 즉 기승전결이 뚜렷한 플롯 중심의 소설 구조를 거부하고, 인물의 내면 의식과 심리적 흐름을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20세기 초반의 문학 사조입니다. 쉽게 말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 '그 순간 인물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가'를 더 중요하게 다루는 방식입니다.
발저는 카프카보다 다섯 살 연상으로, 모더니즘의 선구자격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실제로 프란츠 카프카가 발저의 글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1878년 스위스 빌에서 태어난 발저는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하인과 은행원과 발명가의 조수를 전전하며 유럽 도시를 유랑했습니다. 그 삶의 궤적이 그대로 『산책』의 문체에 새겨져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청년 도시 기록단의 스트리트 아카이빙(Street Archiving) 프로젝트 조사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여기서 스트리트 아카이빙이란 도시의 소외된 공간과 일상적 풍경을 텍스트와 이미지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방법론적 레퍼런스를 찾다가 손에 든 책이었는데,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뭔가 달랐습니다. 이야기가 일직선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문장이 어딘가를 들렀다가, 옆길로 샜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마치 소설 자체가 산책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형식과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는 이 구조가 저한테는 꽤 충격이었습니다.
번아웃 한가운데서 읽은 산책의 의미
일반적으로 번아웃(Burnout)은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번아웃이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무언가를 계속해야 한다는 강박 자체가 내면을 갉아먹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당시 저는 교과서적인 정의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이 감각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멈추면 도태된다는 생각이 하루하루를 지배했습니다. 아카이빙 보고서를 써야 했고, 졸업 논문도 준비해야 했고, 다음 커리어도 설계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발저의 주인공은 서재 일이 지겨워지자 아무 계획 없이 문을 열고 거리로 나갑니다. 그게 소설의 전부입니다.
소설 속에서 가장 오래 머문 장면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세무사를 찾아가 세금을 낮춰 달라고 청하면서, 산책이야말로 자신의 직업에서 반드시 필요한 행위라고 설득하는 대목입니다. "산책을 못 하면 나는 죽은 것"이라는 문장 앞에서 저는 한참 멈췄습니다. 생산적으로 보이지 않는 행위가 실은 가장 본질적인 창작의 토대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이게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걸, 제가 직접 골목을 걸으며 기록하던 경험이 증명해주고 있었습니다.
실존적 소외(Existential Aliena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본래적 존재 방식과 단절되어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를 가리키는 철학적 용어입니다. 발저의 주인공이 서재에서 뛰쳐나오는 행위는 바로 이 소외에 대한 저항으로 읽힙니다. 제 경험상 이 해석은 단순히 학문적 분석이 아니었습니다. 아카이빙 방법론 보고서를 쓰면서 동료 기록가들과 이 장면을 분석할 때, 회의실 안에 갇혀 있던 저 자신과 길 위에 서 있던 발저의 주인공이 겹쳐 보였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에 번아웃을 공식적으로 직업적 현상(Occupational Phenomenon)으로 분류했습니다(출처: WHO). 이 분류가 나온 이후 번아웃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저는 발저가 이미 1917년에 그 처방을 문학의 형태로 써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무위의 삶이 저항이 되는 이유
효율과 속도가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시대에, 무위(無爲)라는 개념은 게으름의 다른 이름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정확히 반대입니다.
여기서 무위란 동양 철학의 맥락에서 '억지로 하지 않음', 즉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발저의 산책자가 보여주는 행보와 이 개념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아이 한 명, 나비 하나, 구겨진 종이 한 장에까지 시선을 멈추는 그 감각은 효율의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감각이 글을 살아 있게 만든다는 것을 저는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발저의 글쓰기 방식을 정신분석학 용어로 자아의 탈중심화(Decentering of the Subject)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는 주체가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는 것을 내려놓고, 외부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발저가 소설에서 직접 말하는 것처럼, 산책자는 자아에서 벗어나 대상 속으로 자신을 포기할 때 비로소 진짜 글을 쓸 수 있게 됩니다.
발저의 이 태도가 단순한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연구도 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팀의 실험에 따르면, 걷기는 창의적 사고를 실내에 앉아 있을 때보다 평균 81%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Stanford University). 발저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을 과학이 수치로 확인한 셈입니다.
발저의 산책자가 현대 문학사에서 특별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카프카보다 먼저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 플롯이 아닌 의식의 흐름을 서사 구조로 삼아 모더니즘의 방법론을 앞서 실현했습니다
- 효율과 성장이 지배하던 시대에 느림과 관조를 가장 생산적인 행위로 역전시켰습니다
-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실제로 산책을 하다 세상을 떠남으로써, 작가의 삶이 작품과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산책』이 당시 대중에게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 돌이켜 보면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헤르만 헤세와 발터 베냐민이 극찬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그 시대도, 지금도, 느리게 걷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발저는 1956년 크리스마스 날, 눈 덮인 길을 걷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산책의 작가가 산책하다 생을 마친 것입니다. 그 마지막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아직도 조금 먹먹합니다.
속도와 효율이 강요되는 시대일수록 『산책』 같은 책이 필요합니다. 거창한 철학 공부가 아니어도 됩니다. 일단 한 번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이유 없이 좀 걸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게 발저가 남긴 가장 단순하고 정직한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