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가 권태로워질 때쯤, 우리는 보통 두 가지 선택 앞에 섭니다. 떠나거나, 남거나. 그런데 사강은 그 갈림길에서 아무도 예상 못 한 세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아직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영문학 수업 시간에 처음 이 소설을 펼쳤을 때, 저는 그 질문이 왜 그렇게 폴의 심장을 건드렸는지 단번에 이해했습니다.
실존적 질문이 된 짧은 쪽지 한 장
영문학 전공 수업에서 "현대 유럽 소설과 심리주의 비평"을 들을 때의 일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모더니즘 소설을 막 끝낸 직후였고, 저는 사강 특유의 건조한 문체가 처음엔 낯설었습니다. 울프가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즉 인물의 내면을 끊임없이 흐르는 사유의 파편으로 독자를 몰아붙이는 방식이었다면, 사강은 정반대였습니다. 최소한의 언어로, 그러나 날카롭게 찌릅니다.
소설 속에서 시몽이 폴에게 보낸 쪽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표면적으로는 음악회 초대장입니다. 그런데 폴이 그 문장에서 17살 무렵을 떠올리는 장면을 읽으며 저는 멈칫했습니다. 이건 음악 취향을 묻는 게 아니었습니다. 실존적 질문(existential question)이란, 단순히 철학적인 난제가 아니라 "당신은 지금 살아 있습니까?"를 묻는 일상 속 균열이기도 합니다. 그 쪽지는 정확히 그런 균열이었습니다.
폴은 39세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5년 차 연인 로제와 안정적이지만 열정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로제의 무관심에 무감각해진 것처럼, 스스로에게도 무감각해진 상태였죠. 그 쪽지 한 장이 그 무감각을 흔든 이유는, 시몽이 그녀의 취향을 궁금해했기 때문입니다. 로제는 오랫동안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소설의 제목이 물음표가 아닌 말 줄임표(...)로 끝나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시몽의 질문 자체보다 그 질문이 폴 안에서 만들어낸 파문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수업 레포트에서 심리주의 비평(psychological criticism)의 관점으로 분석했는데, 심리주의 비평이란 인물의 무의식적 욕망과 내면의 억압을 텍스트 속에서 읽어내는 비평 방법론입니다. 그 시각으로 보면, 폴이 쪽지에 반응한 것은 시몽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오래 묻어뒀던 자기 자신을 향한 감정이었음이 분명해집니다.
방어기제로서의 사랑, 로제와의 관계
솔직히 이건 처음 읽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폴이 그렇게 불성실한 로제를 5년이나 붙든 이유가 단순히 익숙함 때문이라고 보기엔 뭔가 부족했거든요.
정신분석학 비평(psychoanalytic criticism)에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방어기제란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제시한 개념으로, 불안이나 갈등에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심리적 전략을 말합니다. 폴이 로제에게 매달리는 방식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이별의 공포, 나이 듦에 대한 불안,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서 그녀를 그 자리에 붙들어 두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소설을 읽던 시절, 학부 졸업을 앞두고 취업 시장의 스펙 경쟁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던 때였습니다. 폴의 그 고착된 심리가 낯설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잃지 않으려는 것에 더 에너지를 쓰고 있었으니까요. 사강은 그 심리를 폴을 통해 무겁지 않게, 그러나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로제의 캐릭터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는 폴에게 불성실하면서도 그녀를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이 모순이 현실적입니다. 심리학에서 회피 애착(avoidant attachment)이란, 친밀함을 원하지만 동시에 거리를 두려 하는 애착 유형으로, 폴과 로제의 관계는 이 유형의 교과서적 예시처럼 보입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로제가 바람을 피우면서도 폴의 시몽과의 관계에 질투를 느끼는 장면이 그 증거입니다.
폴의 선택, 즉 결국 로제에게 돌아가는 결말을 두고 "왜 시몽을 버렸냐"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결말이 오히려 가장 정직한 리얼리즘이라고 봅니다. 사람은 이상보다 익숙한 고통을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리얼리즘 결말이 불편한 이유
이 소설의 결말이 많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를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처음 읽었을 때 저 역시 "왜 시몽을 택하지 않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읽었을 때는 달랐습니다.
리얼리즘(realism)이란 문학에서 이상화나 낭만화 없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서술 방식입니다. 사강의 리얼리즘은 독자를 위로하지 않습니다. 폴이 로제에게 돌아가 그의 전화를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제시합니다. 인간은 변화보다 익숙함을 선택하고, 그 선택 앞에서 자기 합리화를 한다는 것을요.
이 소설이 그리는 폴의 선택을 문학 비평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로제에 대한 집착은 방어기제이자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 시몽과의 관계는 자아 회복의 계기였지만, 동시에 또 다른 통제와 의존의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 폴이 로제를 택한 결말은 낭만적 실패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고독을 짊어지는 과정입니다.
유럽 현대 소설에서 이처럼 낭만적 환상을 전면 거부하는 결말 구조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실존주의 소설과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란 인간이 본질보다 실존을 먼저 가지며,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만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폴은 끝내 자신의 선택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택합니다. 그게 사강이 말하는 사랑의 민낯입니다(출처: Encyclopædia Britannica).
시몽이 먼저 물러선 이유
시몽에 대해 "폴에게 차여서 떠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다르게 읽었습니다. 시몽은 25세의 젊은 변호사 보조로, 소설 내내 자신의 삶이 타인의 평가와 기준에 의해 운영되어왔다는 자각을 합니다. 그 자각의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25년 동안 이 선생에서 저 선생으로 옮겨 다니며 칭찬이나 부정을 받은 것 말고 내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제가 직접 이 장면을 강의 노트에 밑줄 그었던 기억이 납니다. 졸업 직전의 저에게 그 문장은 소설 속 시몽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몽이 폴에게 열정을 쏟은 것은 폴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사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의 욕망에 처음으로 솔직해진 행위였습니다. 나르시시즘적 투사(narcissistic projection)라는 개념이 있는데, 자신이 원하는 자아의 모습을 타인에게 투영하여 그 타인을 사랑하는 심리 패턴을 말합니다. 시몽이 폴에게서 본 것이 폴인지, 아니면 자기가 되고 싶었던 무언가인지는 모호합니다.
그런데 폴이 시몽에게 "일을 해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순간, 그 관계는 또 다른 억압이 됩니다. 시몽이 폴 곁에서 조용히 물러나는 것은 상처받아서가 아니라, 자신을 다시 잃지 않으려는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강은 그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독자 스스로 채우게 만드는 것이 이 소설의 방식입니다.
마무리하며, 저는 이 소설을 연애소설보다 자아 탐색 서사로 읽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폴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보다, 그 선택 과정에서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 자신에게 무심했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사랑이 반드시 짜릿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 전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오래 남는 책입니다. 연애가 아니라 자신에 대해 물어보고 싶을 때 펼쳐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