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을 도우면 손해라고 정말 믿으십니까? 저는 한때 그렇게 믿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스물다섯, 공유 주택 현장에서 청년들의 날것 그대로의 삶을 기록하면서도 정작 속으로는 타인을 잠재적 경쟁자로만 바라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황폐한 시간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 바로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습니다.
각자도생의 논리가 깨지는 순간
저는 당시 청년 주거 협동조합의 공동체 아카이버로 활동하면서 연대 서사의 가이드라인을 구축하는 작업을 맡고 있었습니다. 아카이브(archive)란 공동체의 기억과 가치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연대를 기록해야 하는 사람이 정작 마음속으로는 연대를 불신하고 있었습니다. 나 하나 챙기기도 버거운 세상에서 타인과 무언가를 나눈다는 행위 자체가 낭만적인 착각처럼 보였습니다.
그 시기에 다시 펼쳐 든 이 책의 첫 번째 단편은 구두수선공 세몬의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세몬이 교회 담벼락에 쓰러진 낯선 청년 미하일을 외투 한 벌로 거두어 집으로 데려오는 장면에서, 솔직히 처음에는 '저렇게 살다가 본인이 망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읽고 나니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세몬이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내민 그 낡은 외투 한 벌이, 천사 미하일이 첫 번째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됩니다. 사람 안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타주의(altruism)란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심리적·행동적 성향을 말합니다. 흔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타주의는 비효율적인 태도로 치부되지만, 사회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협력과 이타적 행동이 장기적으로 개인과 집단 모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저도 직접 공유 주택 현장에서 청년들을 만나 보면서 이것이 이론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서로의 결핍을 내보이고 나눌 때 오히려 공동체 전체가 단단해지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으니까요.
이타심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
천사 미하일이 얻은 두 번째 깨달음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부자 귀족은 장화를 주문하면서 오래도록 신을 수 있는 튼튼한 신발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녁 그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미하일이 이미 만들어 두었던 것은 관에 들어갈 때 신을 목 없는 신발이었습니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 즉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의 부재입니다.
이 장면이 저에게는 단순한 우화 이상으로 읽혔습니다. 당시 저는 졸업 이후의 진로와 생존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손익계산서로 환산하고 있었는데, 그 계산 자체가 근본적으로 허구임을 이 장면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란 인간이 본질보다 앞서 존재하며, 삶의 의미를 스스로 선택과 행동을 통해 만들어 가야 한다는 철학적 사조를 뜻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불확실한 미래를 빌미로 현재의 연대를 회피하는 태도는 실존적 선택의 방기입니다.
세 번째 깨달음인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명제는 단편 전체를 관통하는 알레고리(allegory)의 핵심 결론입니다. 알레고리란 표면적 이야기 뒤에 윤리적·철학적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는 문학적 기법을 말합니다. 제가 공동체 가치 매뉴얼을 집필할 때 이 알레고리 구조를 분석하면서 동료 기록가들과 밤새 토론을 벌였던 기억이 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으려면 그것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고, 세몬의 외투가 바로 그 행동의 정확한 표본이라는 데 결국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미하일이 작별하면서 남긴 말 중 가장 깊이 박힌 문장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있을 때 제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계획해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과 그의 아내의 마음에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문장은 실제로 옳습니다. 제가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주변 동료들이 먼저 내밀어 준 손 덕분이었습니다.
톨스토이의 두 번째 단편 「바보 이반」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같은 메시지를 건드립니다. 이 이야기에서 악마는 권력과 금전적 유혹으로 이반의 형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지만, 이반에게만은 그 전략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반의 왕국에 금화를 풀었더니 사람들은 금화를 장신구나 장난감 정도로 여기다가, 이미 충분히 쌓이자 더 이상 아무도 금을 받으러 오지 않습니다. 결국 악마는 빵 한 조각도 얻지 못하고 굶주린 채 떠납니다.
이 이야기가 현대 사회에 전하는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교환 가치(exchange value)에 집착하는 사회, 즉 모든 것을 금전으로 환산하려는 사회는 악마의 유혹에 취약합니다.
- 사용 가치(use value)를 중심에 두는 공동체, 즉 실제로 필요한 것을 손으로 만들고 나누는 공동체는 그 유혹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 이타심은 비효율이 아니라, 소비 사회의 과잉 욕망에 저항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어 기제입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반 이야기는 마르크스가 말한 상품 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이기도 합니다. 상품 물신주의란 상품이 인간관계를 매개하면서 물건 자체에 사회적 가치가 내재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톨스토이는 철학 용어를 한 마디도 쓰지 않고 이것을 소박한 우화로 완벽하게 구현해 냈습니다.
연대라는 실존적 선택
저는 이 책을 단순한 도덕 교과서로 읽지 않습니다. 당시 아카이브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연대는 착한 사람들이 하는 자기희생이 아니라, 고립된 주체가 소외(alienation)에서 벗어나는 가장 강력한 실존적 도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외란 인간이 자신의 노동, 관계, 본질로부터 단절되어 낯선 존재처럼 느끼는 심리적·사회적 상태를 말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년층의 사회적 고립감 지수는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이는 정서적 지지망의 약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 수치는 톨스토이가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쓴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에도 전혀 낡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근거입니다.
제가 직접 공유 주택 현장에서 수십 명의 청년들과 소통해 보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연결되고 싶은데 먼저 다가가는 게 두렵다"였습니다. 세몬이 교회 담벼락의 미하일 앞에서 처음에 느꼈던 그 망설임과 정확히 같은 감정입니다. 그럼에도 세몬은 낡은 외투를 벗어주었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이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으셨다면, 지금 삶이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에 꺼내 드실 것을 권합니다. 얇고 쉬운 이야기들이지만, 읽고 나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집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각자도생만이 답처럼 느껴지는 날, 이 책이 그 확신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