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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허무주의, 헛수고, 실존주의)

by 이초록 Chorock 2026. 5. 28.

이초록의 영미문학적 삶-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손글씨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하는 감정이 과연 헛수고일까요, 아니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삶의 형태일까요. 영문학 및 비교문학을 전공하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처음 원전으로 마주했을 때, 저는 이 질문 앞에 오래 멈춰 섰습니다. 취업 불안과 무기력 속에서 읽은 이 소설은 단순한 수업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허무주의와 탐미주의가 교차하는 소설의 배경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68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그는 1899년 오사카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부모와 조부모, 누이를 차례로 잃으며 일찍이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체감한 인물입니다. 이 경험이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 즉 허무주의(nihilism)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허무주의란 어떤 노력도, 어떤 감정도 궁극적으로는 무의미하다는 철학적 태도를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격변 속에서도 사회 참여 대신 탐미주의(aestheticism)를 택했다는 점입니다. 탐미주의란 아름다움 그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문학적 태도로, 현실의 추함이나 고통보다 감각적 아름다움의 포착에 집중하는 방식입니다. 참여주의 작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저는 이 선택이 단순한 현실 회피가 아니라 허무주의자로서의 일관된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전쟁의 공포도, 사랑의 열기도, 결국 모두 사라진다는 것을 그는 너무 일찍 배운 사람이었으니까요.

설국은 이 탐미주의와 허무주의가 가장 정교하게 맞물린 작품으로,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도 "일본인의 심성을 탁월한 감수성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출처: 노벨위원회).

헛수고라는 기표가 뜻하는 것

소설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부모의 유산으로 살아가는 유부남으로, 자신이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서양 무용 비평을 쓰며 소일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해마다 눈 덮인 온천 마을을 찾아 기생 고마코와 짧은 시간을 보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수년간 어떤 결정적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호학 비평(semiotic criticism)의 시각에서 보면, 시마무라가 반복적으로 내뱉는 "헛수고"라는 단어는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기표(Signifier)입니다. 여기서 기표란 단어나 이미지처럼 의미를 담는 형식 그 자체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기호학에서는 기표가 지시하는 내용인 기의(Signified)와 항상 임의적 관계를 맺는다고 봅니다. 시마무라의 "헛수고"는 표면적으로는 감정의 무의미함을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관계에 뛰어들기를 두려워하는 내면의 방어 기제를 감추고 있는 겁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강의 노트에 옮겨 적으면서 솔직히 놀랐던 것은, 시마무라의 심리가 당시 저 자신과 너무 닮아 있었다는 점입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어떤 노력도 결실을 맺지 못할 것 같다는 감각, 그래서 아예 감정에 거리를 두는 것이 합리적으로 느껴지던 시기였습니다. 시마무라를 단순히 냉소적 인물로 읽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는 상실을 너무 일찍 배워버린 사람의 자기 보호 방식으로 읽었습니다.

고마코가 시마무라를 다시 만난 날을 "191일째"라고 정확히 기억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문 대목입니다. 헛수고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시마무라 앞에서, 고마코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날짜를 세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진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실존주의 서사로 읽는 고마코의 생명력

고마코는 일반적으로 비극적 기생으로만 소비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 해석이 조금 아쉽습니다. 실존주의 비평(existentialist criticism)의 관점에서 보면 그녀는 전혀 다른 인물로 읽힙니다. 실존주의 비평이란 인물이 부조리한 세계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구성하는가를 분석하는 비평 방법론입니다.

고마코는 병든 약혼자의 치료비를 위해 기생이 되었고, 그 약혼자에게는 이미 새 애인 요코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어떤 선택도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시마무라를 찾아가고 감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가 제시한 시시포스적 실존(Sisyphean existence)의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시시포스적 실존이란 의미 없는 반복 속에서도 그 행위 자체에 온전히 몰입함으로써 부조리를 극복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설국 속 인물들의 위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시마무라: 허무주의적 관조자. 감정을 인식하지만 거리를 둠으로써 스스로를 보호
  • 고마코: 실존주의적 행위자. 덧없음을 알면서도 현재의 감정을 온몸으로 살아냄
  • 요코: 상실 속에 유폐된 인물. 죽은 애인의 무덤가를 매일 찾으며 과거 속에 정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고마코를 통해 허무주의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헛수고일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 뜨겁게 살아있는 사람, 그것이 고마코입니다. 모더니즘 문학(modernist literature) 안에서 이처럼 내면의 섬세한 갈등을 서사로 포착해낸 작품은 흔하지 않습니다. 모더니즘 문학이란 20세기 초 전통적 서사 구조를 해체하고 인물의 내면 의식을 전면에 내세운 문학 사조를 가리킵니다(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은하수 장면이 보여주는 서정적 감각과 실존

소설의 백미는 화재가 난 밤, 시마무라와 고마코가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입니다. 가와바타는 은하수를 단순한 배경 묘사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시마무라가 광활한 은하수에 자신이 빨려 들어가는 듯 느끼는 그 감각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갈망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장면입니다.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이 기법은 서정적 산문시(lyric prose)라는 형식과 연결됩니다. 서정적 산문시란 소설의 서술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시적 이미지와 리듬을 통해 정서를 전달하는 글쓰기 방식으로, 가와바타 문학의 핵심 기법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수업에서 처음 분석할 때 단순한 자연 묘사로 읽고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서야 그 깊이를 알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미지 하나에 이토록 많은 철학적 무게가 실릴 수 있다는 것을요.

고마코가 바로 그 순간, 시마무라가 은하수 속으로 사라질 것을 직감하는 장면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은 무한한 자연 속으로 흡수되고 싶고, 한 사람은 유한한 인간들의 온기 속에 남고 싶은 것. 이 간극이 두 사람이 결코 완전히 가닿지 못한 이유였을 겁니다. 소설의 결말에서 불길 속에 요코가 추락하고, 고마코가 달려가고, 시마무라가 인파에 밀려 멀어지는 장면은 그 간극의 가장 물리적인 표현입니다.

설국을 단순히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읽는 분들도 계신데, 제 경험상 이 소설의 진짜 무게는 그 부분보다 인물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다가가지 못했는가를 읽어낼 때 느껴집니다. 허무주의에 지쳐있던 시기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역설적으로 고마코의 불꽃 같은 태도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설국은 결국 이런 질문을 남깁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어떻게 지금을 살아야 하는가. 시마무라처럼 거리를 두는 것도, 고마코처럼 전부를 내던지는 것도 각자의 방식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그 무기력했던 시기를 통과하면서 배운 것은, 덧없음을 핑계로 감정에 거리를 두는 것이 반드시 더 현명한 선택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소설이 아직 읽히지 않은 분이라면, 가급적 조용한 겨울 밤에 펼쳐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BG5dAQ8l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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