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감을 잘 못한다는 게 진짜 문제일까요, 아니면 공감하는 척만 하는 게 더 큰 문제일까요?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를 영어 번역본과 원문을 나란히 놓고 분석하던 날, 저는 그 질문 앞에서 꽤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오히려 감정 과잉의 시대를 꿰뚫어 본다는 역설이 그렇게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감정 결핍이 폭로하는 것들
주인공 선윤재는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을 안고 태어납니다. 여기서 감정표현불능증이란 뇌의 편도체(Amygdala) 크기가 매우 작아 감정을 인지하고 언어로 옮기는 능력 자체가 제한된 상태를 말합니다. 편도체는 공포, 슬픔, 기쁨 같은 정서 반응을 처리하는 뇌 구조물로, 아몬드와 비슷한 모양이라는 이유로 소설의 제목이 됩니다.
윤재의 엄마는 아들이 세상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감정의 언어를 하나씩 가르칩니다. "고마워, 미안해,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해야 해"라고. 그 장면이 저는 처음엔 조금 안타깝게 읽혔습니다. 그런데 영미권 비교문학 세미나에서 정동 이론(Affect Theory)을 공부한 후에 다시 읽으니 전혀 달랐습니다. 정동 이론이란 감정이 개인 내면에 고립된 것이 아니라 신체와 타자 사이를 흐르는 사회적·관계적 에너지라는 관점으로, 텍스트 속 감정의 흐름을 분석하는 비평 방법론입니다. 이 시각으로 보면 엄마가 가르친 것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동적 언어였습니다.
윤재와 정반대에 놓인 인물이 곤이입니다. 곤이는 감정 자체는 폭발적이지만 사랑받은 경험이 거의 없는 아이입니다. 제가 수업 시간에 학우들과 논쟁하면서 가장 오래 붙들었던 지점이 바로 이 대비였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윤재: 감정을 인지·표현하는 영역은 거의 값 없음에 가깝지만, 엄마와 외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경험은 존재함
- 곤이: 감정 표현의 강도는 매우 크지만, 사랑을 주고받은 경험 자체가 거의 없음
-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끼는 이유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 구도는 단순히 두 캐릭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스물다섯 그 시절, 학점과 진로 압박에 짓눌려 감정이 메마를 대로 메말랐던 제 자신을 윤재보다 오히려 곤이 쪽에서 더 발견했습니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는 강렬한데, 그걸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오히려 주변 관계를 소비적으로 대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문제라는 자각조차 없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곤이보다 더 솔직하지 못했던 셈입니다.
실제로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기 정서 조절 능력과 사회적 관계 만족도는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며, 공감 능력이 낮을수록 또래 관계에서의 고립감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공감 능력과 진짜 인간관계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곤이 아버지가 억지로 화해 자리를 만들었을 때 윤재가 건넨 한마디입니다. "사과는 아저씨가 하시는 게 아니라 제가 해야 할 것 같고, 그러려면 저희 둘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서사의 핵심을 압축하고 있다고 봅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아이가 오히려 사과의 본질, 즉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직접적인 책임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꿰뚫은 겁니다.
공감(Empathy)이라는 개념은 흔히 상대방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과 정서적 공감(Affective Empathy)으로 구분됩니다. 인지적 공감이란 상대방의 관점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말하고, 정서적 공감이란 상대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함께 느끼는 상태를 뜻합니다. 윤재는 정서적 공감이 거의 작동하지 않지만 인지적 공감은 오히려 예리하게 발달한 인물입니다. 덕분에 그는 곤이가 폭력을 통해 원하는 것이 굴복이 아니라 존재의 인정임을 감정 없이도 정확하게 읽어냅니다.
제가 당시 세미나에서 팀원들과 가장 치열하게 토론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곤이의 폭력성이 독자에게 어느 정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결론은 우리가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 그 에너지가 어떤 식으로든 왜곡되어 나온다는 것이었고, 그 왜곡된 형태에 일종의 동일시가 일어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고 폭력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소설 자체도 곤이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도난 오해로 교실에서 물건을 집어 던지던 장면은 주변 친구들에게 실제 상처가 됩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이해된다고 해서 그 방식까지 용납되는 건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상처받은 내면을 이해하는 것과 그로 인한 행동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학술적으로도 공감 능력은 타고나는 부분만이 아니라 관계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한국심리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애착 경험(Attachment Experience)이 풍부할수록 청소년기 공감 능력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애착 경험이란 생애 초기 주요 양육자와 맺는 정서적 유대 관계를 말하는데, 윤재가 엄마와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무조건적 사랑이 바로 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몬드라는 제목에도 저는 그 사랑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도체를 뜻하기도 하고, 엄마가 날마다 챙겨 먹였던 견과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는 반복 속에 쌓인 관심 자체가 아몬드라는 이름을 가진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몬드는 청소년 권장 도서로 분류되어 있지만, 제 경험상 어른이 읽을 때 더 아프게 와 닿습니다. 스펙 경쟁에 매몰되어 주변 사람을 도구화하고 있지 않은지, 사랑받고 싶다는 말을 제대로 꺼내본 적이 있는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직접 사과한 게 언제인지, 이 소설은 그런 질문들을 아주 조용하게 들이밉니다. 지금 인간관계에서 무언가 어긋난 느낌이 든다면, 윤재의 담담한 1인칭 시점을 한번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