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을 전공하던 저에게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온 충격이었습니다. 융합 수업 과제로 처음 펼쳐든 순간, "인간은 유전자를 나르는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는 첫 선언 앞에서 잠시 멍해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과학이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재정의하는지, 그 날카로운 질문은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연선택의 단위는 정말 개체일까
다윈의 자연선택설(natural selection)을 처음 배울 때, 저는 당연히 진화의 주인공은 개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선택설이란 환경에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는 이론으로, 생물학의 가장 기본적인 패러다임입니다. 그런데 도킨스는 이 상식을 정면으로 뒤엎습니다.
그는 자연선택의 진짜 단위가 종도, 개체도 아닌 유전자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자연선택의 단위란 생존 경쟁에서 실제로 선택 압력을 받는 대상을 의미합니다. 개체는 결국 수명이 다하면 사라지지만, 유전자는 세대를 넘어 복제되며 이어진다는 것이 핵심 논지입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도킨스는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이라는 개념을 끌어옵니다. ESS란 집단 내 대부분의 개체가 채택했을 때 어떤 돌연변이 전략도 이를 침범할 수 없는, 진화적으로 최적화된 행동 양식을 의미합니다. 사자가 같은 사자를 잡아먹지 않는 이유는 생태계의 '섭리'가 아니라, 동족 포식이 결국 자신의 유전자 풀을 줄이는 ESS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젤이 사자 앞에서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행동이 유전자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논리, 저는 이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그렇다면 여러분이 착한 행동을 하는 것도 유전자의 명령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강의실 안이 잠시 조용해졌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질문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라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유전적 근연도가 설명하는 이타적 행동의 실체
그렇다면 동물들의 이타적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물소가 무리를 지어 사자에게 잡힌 동료를 구하려 하거나, 꿀벌이 침입자를 막기 위해 침을 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행동 말입니다.
도킨스는 유전적 근연도(r, coefficient of relatedness)라는 개념으로 이를 해석합니다. 유전적 근연도란 두 개체가 특정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을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부모와 자식 사이는 1/2, 형제자매도 1/2, 조카는 1/4, 사촌은 1/8입니다. 도킨스에 따르면 8촌의 근연도는 1/128로,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사실상 낯선 타인과 거의 다를 바 없습니다.
이 시각에서 보면 엄마가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성애도, 꿀벌이 여왕벌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행동도 모두 이기적 유전자의 계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가 잃을 유전자의 양보다 구할 수 있는 유전자의 총량이 더 클 때만 자기희생이 일어난다는 논리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인문학적 맥락에서 모성애나 우정을 늘 인간 고유의 정서로 이해해왔는데, 그 감정조차 유전자 보존을 위한 정교한 프로그래밍일 수 있다는 발상은 낯선 불편함을 안겨줬습니다. 당시 실존적 허무를 느끼던 시기였기에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의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연선택의 단위는 개체가 아닌 유전자
- 개체의 모든 행동은 유전자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프로그래밍
- 이타적 행동도 유전적 근연도 계산에 의한 이기적 전략
- 그러나 인간에게는 유전자 명령에 저항할 수 있는 문화적 도구가 존재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OUP)가 발간한 [이기적 유전자] 초판(1976년)은 출간 즉시 학계와 대중 모두에게 지각변동을 일으켰으며, 현재까지 전 세계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과학 교양서의 고전으로 자리잡았습니다(출처: Oxford University Press).
밈이라는 복제자, 그리고 인간만의 반역 가능성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유전자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일까요? 저는 이 질문을 품고 밤새 강의 노트를 채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킨스 스스로 이 질문에 답합니다. 바로 밈(Meme)이라는 개념을 통해서입니다.
밈이란 유전자가 DNA를 매개로 생물학적으로 복제되듯, 인간의 뇌에서 뇌로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적 복제 단위를 의미합니다. 특정 노래가 순식간에 퍼져나가거나, 이타적인 행동 양식이 문화로 자리 잡는 것이 모두 밈의 작동 방식입니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에서 '밈'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것도 도킨스의 이 개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001년 도쿄 신오쿠보 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한국인 유학생 김수현 씨의 이야기는 유전자의 이기적 계산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유전적으로 전혀 무관한 타인을 위해 즉각적으로 몸을 던진 행동에는 어떤 생존 전략도 없습니다. 도킨스는 바로 이것을 이기적 유전자의 폭정에 대한 인간의 반역이라고 부릅니다.
정신분석학 비평의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유전자는 인간을 조종하는 무의식적 대타자(Other)의 물질적 기표(Signifier)에 해당합니다. 대타자란 개인의 욕망과 행동을 구조적으로 규정하는 외부의 상징적 질서를 가리키는 정신분석학 개념입니다. 유전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밈이라는 문화적 도구는 그 무의식적 명령을 이성으로 거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사르트르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을 때, 그는 인간이 어떤 선천적 본질도 없이 스스로를 만들어간다고 주장했습니다. 도킨스의 밈 이론은 이 실존주의의 생물학적 증명처럼 읽힙니다. 유전자가 우리를 설계했지만, 우리는 그 설계를 의식하고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입니다(출처: Richard Dawkins Foundation for Reason & Science).
저는 이 결론에 이르렀을 때, 당시 느끼던 실존적 허무가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마치 유전자의 명령을 따르는 생존 기계처럼 느껴졌었는데, 인간에게는 그 명령에 반역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선언이 의외로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냉혹한 과학의 언어로 인간을 해체하지만, 동시에 그 해체 위에서 인간 고유의 존엄을 다시 세웁니다. 유전자의 논리를 직시하면서도 그것에 복종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도킨스가 독자에게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과제일지 모릅니다. 과학 고전이 낯설게 느껴지는 분이라면, 이 책을 통해 인간에 대한 질문을 새로운 각도에서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