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다섯 살 세미나실에서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559명의 등장인물, 1860년대를 관통하는 집필 기간,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파도. 그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서사 안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압도적인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이걸 이제야 읽었나.
역사관: 영웅은 없다, 의지의 총합만 있을 뿐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역사는 나폴레옹 같은 위대한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이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인가.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전체를 통해 이 질문에 집요하게 답합니다. 그의 역사관은 영웅주의적 역사관(Heroic Theory of History)을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영웅주의적 역사관이란 나폴레옹, 알렉산드르 같은 특정 인물의 결단과 천재성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시각으로, 19세기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던 통념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소설 말미에 이렇게 씁니다. "권력이란 어느 인물에게 옮겨진 대중 의지의 총합이다." 제가 세미나 발제를 준비하면서 이 구절에 밑줄을 세 번 그었습니다. 우리가 영웅이라 부르는 존재는 사실 수많은 사람들의 집합적 의지를 대변하는 기표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표(記標, signifier)란 언어학에서 의미를 담는 형식적 껍데기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나폴레옹이라는 이름 역시 그 시대 민중이 원하는 무언가를 대리하는 상징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당시 저는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중압감으로 하루하루가 버거웠습니다. 제 선택 하나가 제 삶의 방향을 전부 결정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죠. 그런데 이 소설은 그 착각을 조용히 깨뜨려 주었습니다. 역사는 어떤 한 사람의 결단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 한 사람의 선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리얼리즘: 전쟁터에서 만나는 평화, 거실에서 벌어지는 전쟁
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을 보면 자연스럽게 둘이 대립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소설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톨스토이는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듭니다.
이 작품이 구현하는 문학 방법론은 심리 리얼리즘(Psychological Realism)입니다. 심리 리얼리즘이란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인간 행동의 진실에 육박하는 서술 방식으로,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니라 인물의 감각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가 세미나에서 가장 오래 토론했던 주제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보로디노 전투 장면에서 안드레이가 포탄이 터지는 와중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끼는 이상한 고요함은, 도저히 전쟁 장면처럼 읽히지 않습니다. 반대로 모스크바 상류 사교계의 파티 장면은 언제 누가 누구를 배신할지 모르는 긴장감으로 가득합니다.
이 구조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전쟁도, 평화도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피에르가 프랑스군 포로로 끌려가면서 농부 플라톤과 나눈 대화가 제게는 소설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이었습니다. 총성이 난무하는 후퇴길에서 삶의 진리를 발견하는 장면, 그것이야말로 톨스토이 리얼리즘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이 문학사적으로 어떤 위치를 점하는지를 보여주는 평가가 있습니다.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전쟁과 평화를 "인간이 쓴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언급한 바 있으며(출처: The Paris Review), 이 작품이 단순한 역사 소설을 넘어 인간 실존의 총체를 담아낸 서사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존: 스물다섯의 방황이 이 소설 앞에서 달라보였던 이유
당시 저는 개인이 사회 시스템의 흐름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뼈아프게 느끼던 시기였습니다. 졸업 후의 진로, 취업 시장, 학점, 모든 것이 제 의지와 무관하게 굴러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거대한 구조 앞에서 단독자(single subject)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이 소설의 안드레이, 피에르, 나타샤를 만났습니다. 이들은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부서지고, 방황하고, 다시 일어섭니다. 안드레이는 전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피에르는 프리메이슨에 빠졌다가 농부 플라톤을 통해 진리를 깨닫습니다. 나타샤는 약혼이 깨지는 상처를 겪고도 삶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이들의 서사가 제 방황과 겹쳐 보이는 순간, 저는 처음으로 실존적 위로(existential consolation)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실존적 위로란 타인의 고통과 성장 서사를 통해 자신의 방황이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과정임을 인식하고 안도감을 얻는 심리적 경험을 말합니다. 제 방황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삶의 거대한 서사 안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이 소설이 조용히 알려주었습니다.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BBC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목록에서 전쟁과 평화는 최상위권에 위치하며(출처: BBC Arts),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독자들의 실존적 물음에 답하는 텍스트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합니다.
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안드레이, 피에르, 나타샤 등 주요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역사적 사건과 연결하며 읽기
- 톨스토이가 전투 장면마다 반복하는 "지휘관의 명령은 거의 그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서술에 주목하기
- 소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직접 펼치는 역사철학 논술을 건너뛰지 않기
-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하는 과정을 단순한 군사적 패배가 아니라 교만의 서사로 읽기
나폴레옹의 실패가 우리에게 묻는 것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를 단순한 군사적 패배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는 이것을 오만(hubris)의 귀결로 해석합니다. 오만이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통제 불가능한 것까지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심리적 상태로,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인간 몰락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 개념입니다.
나폴레옹은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의 승리를 포함해 거듭된 성공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모든 변수를 계산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톨스토이가 반복해서 지적하듯, 전장에서 지휘관의 명령이 의도대로 실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게릴라전, 보급선의 붕괴, 이 모든 것은 나폴레옹의 계산 밖이었습니다.
제가 세미나에서 발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이 바로 이것입니다. "신은 파멸시키려는 사람에게서 먼저 이성을 빼앗는다." 이것은 단순히 나폴레옹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이 역사를 통제한다고 믿는 모든 권력자에 대한 경고이며, 동시에 자신의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우리 모두에 대한 물음입니다.
제 경험상 이 소설은 읽는 시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책이 됩니다. 스물다섯에 읽은 저는 실존적 방황 속에서 위로를 받았지만, 지금 다시 읽는다면 아마 권력과 역사에 대한 톨스토이의 철학이 훨씬 더 또렷하게 보일 것 같습니다. 그것이 이 소설을 걸작이라 부르는 이유일 겁니다.
결국 전쟁과 평화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역사의 흐름에 떠밀려 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흐름 안에서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단독자인가. 이 소설을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높은 산을 오르는 마음으로 한 번 시도해 보시길 권합니다.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은 충분히 그 수고를 보상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