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 수업을 듣기 전까지 이 책을 그냥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회고록'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스물다섯, 졸업을 앞두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그 시절에 이 책을 펼쳤고, 첫 챕터를 읽다가 한참 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도 삶의 의미를 붙들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저는 대체 뭘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었던 걸까 싶었거든요.
집행의 망상, 그리고 무너지는 순간
기차가 아우슈비츠 팻말 앞에서 멈췄을 때, 프랭클 박사는 '나만은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를 정신의학에서는 집행의 망상(delusion of reprieve)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집행의 망상이란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처형 직전까지 집행이 유예될지 모른다는 비합리적 믿음에 매달리는 심리적 방어 기제를 뜻합니다. 극단적 공포 상황에서 인간의 뇌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작동시키는 보호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장교 한 명의 손짓 하나로 1,500명은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었고, 함께 온 사람의 90%가 그날 저녁 화장터로 직행했습니다. 박사는 그 손짓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판결이었다는 사실을 몇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됩니다.
수용소에 들어온 직후 수감자들의 심리 반응을 프랭클 박사는 크게 세 단계로 기술합니다. 첫 번째는 충격, 두 번째는 무감각, 세 번째는 석방 이후의 단계입니다. 여기서 무감각의 단계란 반복적인 폭력과 비인간적 처우에 노출되어 감정 반응 자체가 소멸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프랭클 박사 자신도 두 시간 전에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 시체로 옮겨질 때 아무런 감정 없이 수프를 먹었다고 고백합니다.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저는 그것이 잔인함이 아니라 생존 본능임을 이해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용소 생활의 조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로 2m, 세로 2m 40cm의 침상에 9명이 함께 취침
- 하루 배급량은 300g 미만의 빵과 묽은 수프 한 국자
- 수감자는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며 감시자의 폭력에 상시 노출
- 가스실 위장을 위해 화장터 문에 '목욕탕'이라 표기, 수건과 비누 지급 후 입장 유도
이 조건들을 나열하고 나니, 당시 세미나실에서 조원들과 이 대목을 발제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누군가 "이 상황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라고 물었고, 저는 그 질문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로고테라피, 의미를 향한 의지의 힘
여기서 프랭클 박사가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화한 심리치료 이론이 등장합니다. 바로 로고테라피(Logotherapy)입니다. 로고테라피란 '의미(Logos)'를 삶의 근본 동력으로 보고, 의미를 찾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욕구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실존주의적 심리치료 기법입니다. 프로이트의 쾌락 원칙이나 아들러의 권력 의지와 달리, 프랭클은 '의미를 향한 의지(will to meaning)'가 인간 행동의 일차적 동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제가 영문학과 비교문학 연계 세미나에서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처음에는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프랭클 박사가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혹한의 새벽 작업장을 걸어갔다는 서술을 읽는 순간, 그 개념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아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아내를 떠올리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포스트트라우마틱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PTG란 극심한 트라우마 이후 오히려 심리적 회복을 넘어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내적 성장이 이뤄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테데스키와 칼훈이 1996년 처음 개념화한 이 이론은, 프랭클의 로고테라피와 맞닿아 있는 지점이 많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능력이 회복의 핵심이라는 관점에서요.
수용소 안에서도 밤마다 카바레 형식의 공연이 열렸다고 합니다. 하루 배급을 포기하면서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찾아오는 수감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도 심미적 경험과 유머, 즉 예술적 의미 추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제 경험상, 이 대목이야말로 이 책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삶의 의미,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에서 여동생을 제외한 온 가족을 잃었고, 사랑했던 아내와도 영영 재회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박사는 이후 수십 년간 로고테라피 연구와 강연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불어넣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 책의 진짜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것이 위대한 게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썼는가가 위대한 것이라고요.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실존적 공허란 삶의 의미를 잃거나 발견하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내면의 공허감과 무력감을 가리키는 용어로, 프랭클이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정신적 고통으로 지목한 상태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 유병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그 원인 중 하나로 의미 상실과 목적의 부재가 꼽힙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졸업을 앞두고 방황하던 시절의 저도, 지금 돌아보면 실존적 공허 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점도, 스펙도, 미래 계획도 있었지만 그게 '왜' 필요한지를 몰랐으니까요. 그 세미나실에서 강독 노트를 정리하며 제가 도달한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삶의 의미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프랭클 박사의 말처럼,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조건 안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본인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해서 내 의미를 측정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삶이 왠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날, 혹은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아우슈비츠의 이야기가 결국 지금 여기, 우리 각자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느끼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