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출판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출간 첫 해에만 수십만 부가 팔렸습니다. 영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저는 이 숫자를 처음 접하고 "전쟁 직후 사람들이 이 소설에서 뭔가를 찾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읽어보니 그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배경과 맥락: 오랑 시에 내려앉은 죽음의 그림자
소설의 무대는 알제리 북부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오랑입니다. 이야기는 아주 평범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의사 리유가 퇴근 후 병원 계단을 내려오다가 쥐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 이후로 죽은 쥐의 수는 하루가 다르게 불어납니다. 수십 마리, 수백 마리, 급기야 8천에서 9천 마리의 쥐 시체가 도랑을 메우는 지경에 이릅니다.
쥐들이 사라지자 시민들은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직후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이 붓고, 딱딱한 멍울이 잡히고, 고열과 경련이 뒤따랐습니다. 리유는 고름을 채취해 분석한 뒤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합니다. 페스트, 즉 흑사병이었습니다.
여기서 페스트란 페스트균(Yersinia pestis)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감염병으로, 중세 유럽에서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 중 하나입니다. 쉽게 말해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속수무책에 가까운 재앙이었습니다. 리유는 즉시 도청에 연락하고 임시 보건 회의를 열지만, 관료들은 "페스트"라는 단어 자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를 꺼렸습니다. 사회적 혼란과 폭동을 우려한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 이것이 재앙을 키운 첫 번째 원인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처음 읽었을 때 "이건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문학도로서 텍스트의 상징성을 연구하던 시절이었는데, 오랑 시 당국의 모습이 마치 현실의 어떤 집단적 기억과 겹쳐 보였습니다. 위협이 눈앞에 있어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 패턴이 카뮈가 포착한 인간 집단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쇄령이 내려진 도시의 모습은 더욱 처참합니다. 식량 배급이 원활하지 않아 굶주림이 시작되고, 민간요법이 난무하며, 온 도시가 술로 공포를 달랩니다. 사망자 수는 3주차에 302명, 5주차에 321명, 6주차에는 345명으로 끝없이 늘어납니다.
실존주의 비평: 영웅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페스트를 문학적으로 분석할 때 빠질 수 없는 개념이 실존주의(Existentialism)입니다. 실존주의란 신이나 절대적 이성이 아닌 개인의 구체적 실존과 선택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 사상으로, 카뮈는 이를 "부조리(Absurdity)"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여기서 부조리란 의미를 원하는 인간과, 아무런 의미도 돌려주지 않는 세계 사이의 근본적인 충돌을 뜻합니다.
저는 대학원 시절 낡은 자취방 창가에서 비를 맞으며 이 소설을 원문으로 필사했는데, 리유가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무기는 성실성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한동안 손이 멈췄습니다. 영웅적 언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거창한 사명감이나 신의 뜻도 아니고, 그냥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답이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뼈에 박혔습니다.
소설에는 이 부조리에 대응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 리유(의사): 신도 영웅주의도 거부하고 의학적 실천을 통해 묵묵히 환자 곁을 지키는 인물
- 타루: 아버지가 사형을 구형하는 장면을 목격한 이후 "살인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자원해 보건대를 조직한 인물
- 랑베르(기자): 처음에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전부라던 신념을 스스로 뒤집고 연대를 선택한 인물
- 파늘루 신부: 처음엔 페스트를 신의 징벌이라 설교했지만, 어린아이가 고통 속에 죽어가는 장면을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 침묵에 가까운 혼란에 빠진 인물
이 중 저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판사의 어린 아들이 혈청(Serum) 주사를 맞고도 끝내 죽어가는 부분입니다. 혈청이란 감염된 생물의 혈액에서 추출한 항체를 포함한 액체로, 당시 페스트 치료에 사용된 유일한 의학적 대응 수단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경련을 일으키며 침대 위에 십자가에 못 박힌 듯한 자세로 죽어가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리유는 파늘루 신부에게 격노합니다. "죄 없는 아이에게까지 형벌을 내리는 세계라면, 죽어서도 거부하겠습니다." 제가 읽으며 가장 오래 앉아 있었던 문장입니다. 진로에 막막했던 당시, 저는 이 분노가 단순한 신 부정이 아니라 인간이 부조리 앞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반응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카뮈 연구에서 자주 인용되는 알베르 카뮈 소사이어티(Albert Camus Society)의 분석에 따르면, 리유는 카뮈가 제시한 "반항하는 인간(L'Homme Révolté)"의 실천적 형상으로, 신의 섭리나 역사적 목적론에 기대지 않고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인간적 도리를 실천함으로써 부조리에 저항하는 인물로 해석됩니다(출처: Albert Camus Society).
연대의 의미: 페스트가 끝난 뒤에도 남는 것
소설의 결말은 표면상 희망적입니다. 어느 날 도시에 다시 쥐들이 건강하게 뛰어다니기 시작하고, 페스트는 물러갑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축제를 벌입니다. 그러나 리유는 그 축제를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울 날이 온다."
제 경험상 이 마지막 문장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서늘하게 남습니다. 재앙이 끝났다는 안도감 바로 다음에 "하지만 다음에도 올 것이다"라는 경고를 붙이는 방식이, 독자를 편안하게 놓아주지 않으려는 카뮈의 의도처럼 읽혔습니다.
연대(Solidarity)란 개인이 고통을 혼자 감당하는 대신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는 행위입니다. 쉽게 말해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충동을 이겨내는 선택입니다. 랑베르가 탈출 직전에 멈춰 선 것, 타루가 보건대를 조직한 것, 리유가 아내가 죽은 뒤에도 환자를 놓지 않은 것, 모두 이 연대의 실천입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의 카뮈 아카이브에 따르면, 카뮈는 페스트 집필 당시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직접적 모델로 삼았으며, 페스트는 전쟁과 전체주의,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인간을 압도하는 집단적 재앙 전체를 상징하는 알레고리(Allegory)로 설계되었습니다. 알레고리란 하나의 이야기가 표면의 의미 아래 또 다른 층위의 의미를 담고 있는 문학적 장치입니다(출처: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졸업을 앞두고 불확실한 사회라는 또 다른 '재앙' 앞에 섰을 때, 저는 이 소설에서 배운 것이 하나였습니다. 거창하게 세상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곁을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이 리유의 답이었고, 솔직히 말하면 제가 그 시절 버텼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카뮈의 페스트는 결국 "우리는 언제든 재앙을 맞을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그래도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소설입니다. 그 질문이 1947년에도,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페스트균이 사라지지 않듯 부조리한 세계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지금 어떤 개인적 막막함을 겪고 있는 시기라면 특히 더 권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