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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인지편향, 공포본능, 부정본능)

by 이초록 Chorock 2026. 6. 17.

이초록의 영미문학적 삶-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손글씨

뉴스 앱을 열 때마다 세상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신 적 있습니까. 저는 스물다섯 무렵, 미디어가 쏟아내는 재난과 갈등 보도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막연한 종말감 같은 것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때 영문학 세미나에서 원전으로 읽게 된 책이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였고, 그 책은 제 세계 인식 방식을 꽤 근본적으로 뒤흔들었습니다.

침팬지보다 낮은 정답률이 말해주는 것 — 인지편향의 구조

한스 로슬링은 전 세계 12,000명을 대상으로 세계의 현황을 묻는 3지선다 문제 12개를 출제했습니다. 응답자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도 있었고, 각국의 정치인과 대기업 CEO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평균 정답 수는 2개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위로 찍는 침팬지라면 수학적으로 4개를 맞힐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히 '틀렸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틀린 방향이 일정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실제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더 빈곤하고, 더 나쁜 방향으로 가는 곳으로 일관되게 오해했습니다. 이것이 로슬링이 말하는 인지편향(cognitive bias)의 핵심 구조입니다. 인지편향이란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발생하는 오류 패턴으로, 단순히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에 깊이 뿌리내린 왜곡입니다.

저도 세미나 준비를 하면서 직접 그 문항들을 풀어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문학 텍스트를 분석하는 훈련을 꽤 받았다고 자부했지만, 세계 초등학교 취학률이나 1인당 소득 분포에 관한 문항에서 저 역시 부정적인 방향으로 틀렸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미디어 서사가 만들어낸 세계관이 얼마나 깊숙이 제 인식을 점령하고 있는지 실감했습니다.

로슬링은 이 왜곡을 10가지 본능으로 분류합니다. 그중 간극 본능(gap instinct)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간극 본능이란 세계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두 극단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다고 가정하는 경향입니다. 실제로는 전 세계 인구의 약 75%가 중간 소득 구간에 속해 있습니다. 극단적 빈곤층은 전체의 10% 미만으로 줄었습니다(출처: 세계은행).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1960년대의 이분법으로 2020년대 세계를 읽고 있습니다.

로슬링의 비유가 정확합니다.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이동하는 사람 눈에는, 직접 운전하는 사람과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과 맨발로 걷는 사람이 모두 비슷하게 '낮은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유의미한지는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팩트풀니스가 말하는 왜곡된 본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간극 본능: 세계를 두 극단으로만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
  • 부정 본능: 나쁜 것이 줄어도 나쁜 것만 기억하는 경향
  • 공포 본능: 위험을 실제보다 크게 인식하도록 설계된 진화적 반응
  • 비난 본능: 복잡한 문제의 원인을 한 사람이나 집단에 귀속시키려는 충동

공포본능과 부정본능 — 왜 세상은 실제보다 나빠 보이는가

공포 본능(fear instinct)이란 위협적인 정보를 다른 정보보다 훨씬 강하게 인식하고 기억하도록 인간에게 내장된 본능적 반응입니다. 진화적으로 설명하면, 막대기를 뱀으로 착각한 조상은 살아남았고 뱀을 막대기로 착각한 조상은 죽었습니다. 우리는 전자의 후손입니다. 즉 과도한 경계심 자체가 생존에 유리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본능이 현대 미디어 환경과 만났을 때 오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언론은 구조적으로 공포를 자극하는 뉴스를 더 자주, 더 크게 보도합니다. 조회수와 판매 부수가 거기에 달려 있으니까요. 이건 기자들이 특별히 나쁜 의도를 가져서가 아니라, 그들도 같은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부정 편향이란 인간이 동일한 강도의 긍정 정보보다 부정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적 경향으로, 인지과학 분야에서 수십 년간 축적된 연구를 통해 확인된 현상입니다(출처: 미국 심리학회).

제가 세미나 밤새 강의 노트에 빼곡히 적어두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로슬링은 세상이 여전히 나쁘다는 사실과,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예로 듭니다. 아이가 여전히 인큐베이터 안에 있다는 것은 상태가 완전하지 않다는 뜻이지만, 3주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사실 또한 동시에 참입니다. 이 두 문장 사이에는 논리적 모순이 없습니다.

저는 이 비유가 세미나에서 가장 오래 토론된 지점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세상의 고통을 강조할수록 도덕적으로 보인다는 로슬링의 지적이 날카로웠습니다. 우리는 종종 절망적으로 말해야 진지한 사람처럼 보인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로슬링은 그것이 또 다른 형태의 인지적 왜곡이라고 짚습니다.

비난 본능에 관한 서술도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싶었던 부분입니다. 2015년 지중해에서 난민선이 전복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밀입국 업자를 악마처럼 묘사했습니다. 실제로는 유럽연합 정책상 난민 운송에 사용된 선박은 적발 즉시 몰수되도록 되어 있었고, 선주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버릴 배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물론 밀입국 업자의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단 하나의 악당을 지목하는 것으로는 문제의 원인을 절대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로슬링이 남긴 말 그대로입니다. 영웅을 찾으려 하지 말고 시스템을 찾고, 악당을 찾으려 하지 말고 원인을 찾으라고.

책의 마지막 장에서 아들이 쓴 맺음말은 읽다가 멈칫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앰뷸런스에 실려가면서도 원고 복사본을 챙겼다고 합니다. 세상이 실제로는 덜 나쁘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에, 그는 말 그대로 마지막까지 매달렸습니다.

팩트풀니스는 통계서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신념이 응축된 책입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상을 이성적으로 읽는 훈련, 그리고 그 훈련이 실제로 더 나은 판단과 더 적은 공포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뉴스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무조건 낙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는 것, 그것이 오히려 더 용기 있는 태도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세계가 지금보다 낫지 않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을 한 번 펼쳐보시기를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f7aIlPV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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