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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에 반하여 (번아웃, 형식 비평, 예술의 성애학)

by 이초록 Chorock 2026. 7. 7.

이초록의 영미문학적 삶- 해석에 반하여 수전 손택 손글씨

솔직히 말하면, 저는 한동안 책을 읽는 목적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스물다섯, 졸업을 코앞에 두고 시각 예술 아카이브 플랫폼에서 이미지 분석 매뉴얼을 집필하던 그 시절, 저는 모든 것에서 의미를 캐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정작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번아웃이 왔을 때 집어든 책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복수 전공하면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 작품을 작품으로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논문을 쓰든, 에세이를 쓰든, 이미지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든, 모든 결과물에는 반드시 측정 가능한 가치와 심오한 의미가 수반되어야 했습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 강박은 창작 의욕을 갉아먹는 데 정말 탁월했습니다.

그 시기에 비평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기 위해 다시 꺼내든 책이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하여』였습니다. 1966년 손택이 서른세 살에 출간한 이 첫 평론집은, 당시 뉴욕 지성계에서 하나의 폭발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해석은 지성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다"라는 첫 문장부터가 선전포고였으니까요.

손택이 책에서 비판하는 것은, 1960년대 서구 비평계를 지배하던 해석학적 환원주의(Hermeneutic Reductionism)입니다. 여기서 해석학적 환원주의란, 예술 작품을 그 자체로 경험하는 대신 내부에 숨겨진 의미나 상징 체계로 분해하여 이해하려는 비평 태도를 말합니다. 마르크스주의 비평은 작품에서 계급 투쟁의 알레고리를 읽어내고, 프로이트 기반의 정신분석 비평은 작가의 억압된 욕망과 거세 불안을 텍스트 표면에서 발굴해냈습니다. 카프카의 소설이 사회적 알레고리인지, 심리적 알레고리인지, 종교적 알레고리인지를 두고 비평가들이 경쟁하는 동안, 정작 그 소설이 독자에게 주는 날것의 충격은 어디에도 없었던 거죠.

제가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도 그 비평가들과 똑같이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미지 하나를 코드화할 때마다 저는 그 이미지가 어떤 사회적 맥락을 담고 있는지, 어떤 이데올로기적 기표(Ideological Signifier)를 품고 있는지를 먼저 물었습니다. 기표란 소쉬르 기호학에서 '의미를 담는 형식', 즉 언어나 이미지의 표면적인 요소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표면 자체를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형식 비평이라는 각성

손택이 제안하는 대안은 형식 비평(Formal Criticism)입니다. 형식 비평이란, 작품이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즉 구조·리듬·색채·질감 같은 형식적 요소에 주목하는 비평 방법론입니다. 손택은 이를 더 나아가 예술의 성애학(Erotics of Art)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합니다. 예술의 성애학이란 작품의 감각적 물질성,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는 원초적인 경험을 비평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해석학(Hermeneutics)이 아니라 그 반대편의 관능적 수용을 이야기한 거죠.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사람들은 흔히 형식에 주목하는 것이 내용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손택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최상의 비평은 내용에 대한 생각을 형식에 대한 생각에 녹여내는 드문 유형의 비평"이라고 썼습니다. 내용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형식을 압도하는 순간 예술 경험이 파괴된다는 뜻입니다.

손택이 해석 강박의 문화적 배경으로 지목한 것은 1960년대 뉴욕의 이중 풍경이었습니다. 한쪽에는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주의로 무장한 좌파 지식인들의 엄숙주의 문화가 버티고 있었고, 다른 쪽에는 비틀즈, 앤디 워홀의 팝아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폭발하는 대중문화의 붐이 있었습니다. 손택은 이 두 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도스토옙스키와 B급 SF 영화를 같은 자리에 앉혀 놓고 비평했습니다.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라는 위계 자체를 거부한 거죠.

이 책에서 손택이 다루는 비평 대상들을 보면 그 폭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습니다.

  • 체사레 파베세, 시몬 베유,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등 문학·철학 텍스트
  • 레비-스트로스, 게오르그 루카치의 인문·사회과학 비평
  • 연극과 극본, 유럽 예술 영화
  • 비틀즈,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와 팝아트

제가 플랫폼 보고서를 집필할 때 이 목록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3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이 모든 텍스트를 직접 읽고 해체한 것이니까요.


예술의 성애학, 삶에 적용하다

손택의 논지를 실제 작업에 적용해봤을 때, 가장 강하게 체감한 것은 '캠프(Camp)' 개념이었습니다. 캠프란 인위적이고 과장되고 부자연스러운 것에서 미적 쾌락을 발견하는 감수성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레이디 가가가 무대에서 입는 300만 개의 깃털 드레스나,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풍기는 건축적 과잉이 캠프의 사례입니다.

손택은 「캠프에 관한 노트」에서 "나쁜 취향에서 좋은 취향을 발견하면 큰 해방감을 누릴 수 있다"고 썼습니다. 고급 취향과 저급 취향의 위계를 거부하고, 감각적 쾌락 자체를 긍정하는 태도입니다. 이 에세이가 발표됐을 때, 좌파 지식인들은 손택이 예술을 탈정치화했다고 비판했고, 보수 진영은 문화적 위계를 무너뜨렸다고 반발했습니다. 훗날 퀴어 이론가들은 캠프가 게이 하위문화의 감수성을 공론장으로 끌어올린 공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의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논쟁들이야말로 손택이 얼마나 정확하게 급소를 건드렸는지를 방증합니다. 모든 진영이 불편해했다는 것은, 손택이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 책은 단순한 비평 매뉴얼 이상이었습니다. 모든 것에 의미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 감각보다 해석을 우선하는 태도, 그게 저를 번아웃으로 몰고 있었다는 걸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처음으로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손택이 촉구한 것은 비평 방법론의 전환만이 아니라, 삶을 경험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재조정이었습니다.

손택의 문체 자체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논리적이고 건조하다는 점은 한번쯤 짚고 넘어갈 만합니다. 감각의 회복을 주장하면서 가장 이성적인 언어를 쓴 셈이죠. 이것은 1960년대 남성 지식인들이 독점하던 비평 언어의 장에서, 여성 비평가로서 정면 승부를 택한 손택의 전략적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스스로 '여성 작가'라는 범주에 묶이기를 거부했고, 동시대 남성 지성계에 그들 자신의 언어로 반격을 가했습니다. 그 탁월함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어딘지 쓸쓸한 이유는 저만 그런 게 아닐 것 같습니다.

20세기 서구 예술 비평의 흐름과 관련하여, 손택의 작업은 이후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 분야에서 텍스트의 물질성과 수용미학(Reception Aesthetics)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수용미학이란 텍스트의 의미가 작가가 아닌 독자와 관람자의 경험 속에서 완성된다는 이론입니다(출처: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손택이 씨앗을 뿌린 방향이 여기로 흐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비평과 정신분석 비평이 1960년대 서구 인문학을 어떻게 지배했는지에 대한 배경 이해는 당대의 아카데믹 비평 지형도를 정리한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 문학 비평).


이 책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2부에서 다루는 사상가들, 즉 레비-스트로스, 루카치, 시몬 베유를 모른다면 그 챕터는 꽤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손택의 문장 자체는, 그 대상을 몰라도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묘한 전율을 줍니다. 저는 이 책을 비평 도구로 먼저 읽었지만, 돌이켜보면 삶의 태도를 바꾸는 책으로 남았습니다. 한 번쯤 손택이 다루는 작품 중 하나라도 직접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해석하려 들기 전에, 그냥 한 번 봐도 괜찮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6fP9D8aMU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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