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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진짜의 역설, 무당 서사, 악의 건축)

by 이초록 Chorock 2026. 6. 10.

이초록의 영미문학적 삶- 혼모노 성해나 손글씨

진짜가 되려고 발버둥칠수록 오히려 가짜가 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는 바로 그 역설적인 질문을 정면으로 들이밉니다. 저는 이 책을 학부 세미나 수업에서 처음 텍스트로 다뤘는데, 솔직히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진짜의 역설 — 무당 서사가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

'혼모노(本物)'는 일본어로 '진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어떤 대상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으로도 쓰입니다. 성해나는 이 중의적 단어를 소설 전체의 축으로 삼아, 진짜가 되려는 욕망과 그 욕망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과정을 무당의 세계를 통해 풀어냅니다.

소설의 주인공 문수는 무당 경력 30년의 인물입니다. 유명 정치인의 앞날을 봐줄 만큼 영험하다고 알려졌지만, 나이가 들면서 신령의 응답이 끊기기 시작합니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번아웃이라고 진단하지만, 문수에게 이것은 단순한 피로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이 진짜 무당인가, 라는 실존적 의심의 문제입니다. 그 앞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내기 신혜기는 신 내림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집 앞에 인파가 줄을 잇습니다. 그녀는 급기야 문수가 30년간 섬겨온 장수 할멈이 이제 자신에게 왔다고 선언하기까지 합니다.

이 대목이 제게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30년의 공력을 쌓아온 사람이 신내기에게 자리를 내준다는 서사는, 단순한 질투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당시 학부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면서 이 구조를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Simulacre) 개념과 연결해 분석했습니다. 시뮬라크르란 원본 없이 복제만 존재하는 이미지, 즉 실재보다 더 실재처럼 느껴지는 환상적 기표를 의미합니다. 문수가 축적해온 30년의 영험함이 실재라면, 신혜기의 즉각적인 신기(神氣)는 어쩌면 시뮬라크르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대중은 후자를 더 '진짜'로 받아들입니다. 이 구도야말로 성해나가 이 소설에서 가장 예리하게 찌르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클라이맥스인 작두 굿 대결 장면은 이 역설을 신체적으로 구현합니다. 문수는 신이 떠났음에도 작두에 오릅니다. 발바닥은 피로 흥건하고 장삼은 붉게 물들지만 그는 내려오지 않습니다. 신혜기가 먼저 쓰러지는 것은 결국 문수입니다. 신이 없는 상태에서 작두를 탄 문수. 그 순간 소설은 말합니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진짜를 증명하려는 욕망을 놓아버렸을 때 비로소 진짜 박수가 되는 아이러니, 이것이 이 작품이 전하는 핵심입니다.

이 소설이 주목받은 데는 문학적 맥락도 있습니다. 한국 현대소설을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2010년대 이후 한국 단편소설은 개인의 미세한 감정과 일상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경향이 강화되어 왔습니다(출처: 한국문학번역원). 성해나의 작품은 이 경향과 결을 달리합니다. 그로테스크한 신체 감각, 집요하고 어두운 인간 본성, 잔혹한 욕망의 해부. 저는 이 낯섦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라고 봅니다.

『혼모노』의 문학적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중의적 제목: '진짜'이면서 동시에 '광신적 집착자'를 뜻하는 이중 기표
  • 그로테스크한 신체 서사: 피와 땀이 뒤섞인 감각적 묘사로 독자를 현장에 끌어들임
  • 역설적 결말 구조: 욕망을 포기하는 순간에야 진짜가 되는 아이러니
  • 인간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는 서사 태도

악의 건축 — 『구회집 가월동 78번지』가 묻는 것

두 번째 작품에서 성해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이어갑니다. 이번에는 1970년대 독재정권 하의 건축가 이야기입니다. 실제 역사적 공간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고문 시설을 설계한 건축가들의 내면을 해부합니다.

권력에 순응하며 출세한 건축가 여제화는 정부로부터 가월동의 이른바 '경동 수련원' 설계를 맡습니다. 공식 명칭은 수련원이지만 실제로는 불온 세력을 잡아다 취조하고 고문하는 시설입니다. 여제화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맡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교로는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말을 잘 듣는 구보승을 선발합니다.

여기서 정신분석학 비평의 렌즈를 빌리면 흥미로운 구조가 드러납니다. 라캉의 개념에서 대타자(the Other)란 개인이 욕망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준이 되는 상징적 권위를 의미합니다. 여제화에게 대타자는 정권이고, 구보승에게는 스승 여제화입니다. 구보승은 스승의 말, 즉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가르침을 철저히 내면화합니다. 그런데 그가 실천하는 방식이 소름 끼칩니다. 60cm의 가파른 나선형 계단, 비명이 멀리 울리도록 높인 복도 천장, 단 10분만 빛이 들어오도록 계산된 수직창. 모두 고문 대상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공포와 무력감을 주기 위한 설계입니다. 구보승은 이것이야말로 '그 공간에 있을 인간'을 위한 가장 철저한 설계라고 말합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읽었을 때 잠깐 책을 덮어야 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악인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구보승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자기기만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승의 원칙을 가장 일관되게 실천한 사람은 그였습니다. 반면 여제화는 악한 목적의 건물 설계를 맡아놓고 끝까지 "건축은 인간을 위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결국 그는 설계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 대신 구보승의 이름을 올려놓고 책임을 피합니다. 누가 더 진짜 악인입니까?

이 소설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분석하면서 제시한 개념으로, 거대한 악이 괴물 같은 인물이 아닌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의 명령 이행에 의해 완성된다는 통찰입니다. 구보승은 괴물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스승의 말을 가장 성실하게 따른 학생이었습니다. 그 성실함이 어떻게 건축 역사상 가장 잔혹한 공간 중 하나를 만들어냈는지, 이 소설은 섬뜩할 만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근현대 한국 건축과 권력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에서도 이 시기 국가 주도 건축이 어떻게 통제와 억압의 공간 문법을 구현했는지 분석한 바 있습니다(출처: 국가기록원). 성해나는 그 역사적 공간을 소설 속에서 다시 해부함으로써, 독자에게 건축이 단순한 미학의 영역이 아니라 권력과 윤리의 문제임을 각인시킵니다.

두 소설이 공유하는 핵심 주제를 보면, 결국 두 작품 모두 '진짜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는 점에서 수렴합니다. 진짜 무당이 되려는 집착, 그리고 진짜 건축가의 원칙이라는 명분. 두 경우 모두에서 '진짜'라는 기표는 욕망과 기만, 그리고 파멸의 연쇄를 촉발합니다.

성해나의 소설은 기존 한국 단편소설이 즐겨 다루던 섬세한 일상의 내면보다, 인간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어두운 집착과 잔혹함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저는 이 독특한 서사 방식이 앞으로 장편소설로 이어진다면 어떤 스케일과 깊이를 보여줄지 기대가 큽니다. 아직 『혼모노』를 읽지 않으셨다면, 불편하더라도 끝까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인간의 어떤 면이 가장 '진짜'인지, 읽고 나서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될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Yj3ojCKp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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