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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자연선택, 유전적 근연도, 밈) 인문학을 전공하던 저에게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온 충격이었습니다. 융합 수업 과제로 처음 펼쳐든 순간, "인간은 유전자를 나르는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는 첫 선언 앞에서 잠시 멍해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과학이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재정의하는지, 그 날카로운 질문은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자연선택의 단위는 정말 개체일까다윈의 자연선택설(natural selection)을 처음 배울 때, 저는 당연히 진화의 주인공은 개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선택설이란 환경에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는 이론으로, 생물학의 가장 기본적인 패러다임입니다. 그런데 도킨스는 이 상식을 정면으로 뒤엎습니다.그는 자연선택의 진짜 단위가 종도, 개체도 아닌.. 2026. 5. 27.
제인 에어 (가부장제, 다락방의 미친 여자, 실존적 해방) 학점을 위해 읽기 시작한 소설이 밤새 손을 놓을 수 없는 책이 된 경험, 혹시 있으신가요? 저는 영문학 전공 시절 빅토리아 시대 소설 수업에서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처음 원전으로 읽으며 그런 밤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그 겨울 밤의 감각이 생생합니다.억압의 시대에 태어난 소설1847년은 영국 사회가 들끓던 시절이었습니다. 차티스트 운동(Chartist Movement)이 절정에 달하던 때였는데, 이 운동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 계급이 선거권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선 영국 최초의 대중적 정치 운동입니다. 쉽게 말해, 오랫동안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공적 언어로 선언한 사건이었습니다.바로 그해에 제인 에어가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은 사유재산을 .. 2026. 5. 26.
검은 고양이 (억압된 귀환, 고딕 서사, 심층분석) 솔직히 저는 처음 [검은 고양이]를 읽었을 때 단순한 공포 소설인 줄 알았습니다. 영문학 전공 수업에서 원전을 펼쳐 들고 강의 노트를 채워 나가던 어느 밤, 주인공의 붕괴 서사가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근대 합리주의가 억압한 인간 내면의 균열을 정밀하게 해부한 텍스트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이 작품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충격은 제가 경험한 실존적 침체기와 정확하게 맞닿아 있었습니다.억압된 것의 귀환, 나레이터의 일인칭 고백이 폭로하는 것[검은 고양이]의 가장 정교한 장치는 일인칭 고백 서사(first-person confessional narrative)입니다. 여기서 일인칭 고백 서사란 화자가 독자를 향해 자신의 행위와 심리를 직접 진술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상성을 증명하려는 구조를 말합니.. 2026. 5. 25.
인간 실격 (작가 배경, 요조 분석, 현대적 의미) 영문학 전공 수업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원전을 처음 펼쳤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카프카의 소외된 인간을 다뤄왔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요조의 첫 독백이 당시 제 속 어딘가를 정확히 건드렸거든요. 1948년에 나온 소설이 2020년대에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최상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는 이유가 그날 이후 계속 머릿속에 걸렸습니다.다자이 오사무가 요조를 만들기까지: 작가의 배경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동북 지방의 대지주 가문 열째로 태어났습니다. 숫자만 보면 유복한 출발이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중의원을 지낸 아버지는 늘 자리를 비웠고, 어머니는 열 명이 넘는 자녀를 감당하기 어려운 몸이었습니다. 다자이는 태어나자마자 유모 손에 자랐고, 그 공백은 .. 2026. 5. 25.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아동 트라우마, 실존주의, 성장 서사) 아이에게 '이해받는 경험'이 단 한 번이라도 없으면, 그 결핍은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영문학 수업에서 조제 마우루 드 바스콘셀루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처음 분석했을 때, 저는 그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납득했습니다. 1960년 초판 발행 이후 전 세계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된 이 작품이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제제가 겪는 상처가 특정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아동 트라우마: 제제가 악동으로 불린 이유다섯 살 제제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외곽 방구 시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실직한 아버지, 공장으로 내몰린 어머니, 8개월치 밀린 집세. 이 구조 안에서 제제에게 돌아온 것은 대화가 아니라 매질이었습니다.아동 트라우마(childhood trauma)란 발달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2026. 5. 24.
노르웨이의 숲 (시대적 배경, 실존주의, 상실의 의미) 영문학 수업 시간에 처음 이 소설을 손에 쥐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공 커리큘럼 안에서 하루키를 마주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와타나베가 겪는 상실이 어딘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도 학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방향을 잃은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이 소설은 단순한 청춘 소설이 아닙니다. 죽음과 삶, 그 경계에서 표류하는 인간의 이야기입니다.1960년대 말 일본, 상실이 태어난 시대적 배경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 출간되었지만, 이야기의 배경은 1960년대 말 일본입니다. 이 시기는 전공투 운동, 즉 학생 운동이 절정에 달했다가 급속히 붕괴하던 때였습니다. 여기서 전공투 운동이란 1960년대 후반 일본 전국 대학에서 일어난 급진적 학생 .. 2026.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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