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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역주행, 선택, 안진진) 25살이라는 나이가 '결혼 적령기'라고 불리던 시대의 이야기를 2025년에 읽는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미나에서 양귀자의 소설 [모순]을 처음 펼쳤을 때, 저는 오히려 첫 장부터 손을 놓지 못했습니다. 1998년 출간된 이 소설이 2023년부터 역주행을 시작해 2025년 현재 170쇄를 돌파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역주행 소설이 지금도 울리는 이유사실 저도 처음엔 고전 텍스트를 분석하는 학문적 과제로만 접근했습니다. 영문학 및 비교문학 전공 과정의 '근대성 이후의 한국 소설과 주체적 내러티브의 형성 구조 연구' 세미나에서 원전 분석 대상으로 이 소설을 만났거든요. 그런데 강의 노트를 채워 나가다가 어느 순간 학술적 분석이 아니라 제 얘기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솔직.. 2026. 6. 8.
사탄 탱고 (배경과 맥락, 서사 분석, 실존적 의미)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크라스나호르카이 라슬로의 대표작 [사탄 탱고]는 데뷔작임에도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압도적인 묵시록 서사로 평가받습니다. 저도 처음 이 책을 세미나 커리큘럼에서 마주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에 마침표조차 드문 만연체 문장이 이어지는데, 덮고 싶다는 충동과 계속 읽어야겠다는 강박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몰락한 헝가리 집단 농장, 그 배경과 맥락이 소설이 1985년에 출간됐다는 사실은 꽤 중요합니다. 당시 헝가리는 소비에트 연방 체제 아래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있었고, 집단 농장(콜호즈) 방식의 공동 생산 체제가 사실상 붕괴 직전이었습니다. 헝가리는 1945년 소련 점령 이후 집단화 정책을 강제로 시행했지만, 이는 농업 생산성의 급격한.. 2026. 6. 7.
벚꽃동산 (귀족 몰락, 계급 전환, 체호프) 변화의 파도 앞에서 눈을 질끈 감아버린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전공 수업에서 체호프의 희곡 [벚꽃동산]을 원전으로 처음 읽었을 때 그 질문을 정면으로 얻어맞았습니다. 1904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읽고 나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묵직한 잔상을 남깁니다.귀족 몰락: 어린이 방에서 끝내 나오지 못한 사람들[벚꽃동산]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제목만 보고 서정적인 낭만극을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읽어보면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제가 처음 텍스트를 폈을 때도 솔직히 그랬습니다. 아름다운 벚꽃나무들이 도끼 소리와 함께 잘려 나가는 결말은 어떤 낭만과도 거리가 멉니다.작품의 배경은 19세기 말 러시아입니다. 1861년 농노 해방령 이후 러.. 2026. 6. 6.
부활 (도덕적 각성, 계급 구조, 실존적 구원) 누군가 당신에게 "지금 살고 있는 방식이 정말 당신의 선택입니까?"라고 물어온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영문학·비교문학 전공 시절, 이 질문을 톨스토이의 소설 한 권이 먼저 던졌습니다. 당시 저는 제도권 학문의 평가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기준대로 공부하며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부활을 원전으로 읽으면서, 그 믿음이 흔들렸습니다.도덕적 각성, 한 귀족의 뒤늦은 자각톨스토이의 부활은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닙니다. 귀족 청년 네흘류도프가 과거에 자신이 망가뜨린 여인 마슬로바를 법정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고, 그 죄책감이 그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이야기입니다.저는 이 작품을 수업에서 처음 접할 때, 솔직히 말해 네흘류도프의 변화가 과연 진심인가를 의심했습니다. 부유한 귀족이 마음 한 번 먹.. 2026. 6. 5.
작별하지 않는다 (역사적 트라우마, 기억의 서사, 제주 4·3)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전공하면서 홀로코스트 텍스트나 남미의 독재 서사 같은 서구 중심의 역사 소설만 읽어왔던 저에게,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솔직히 예상 밖의 충격이었습니다. 수업 과제로 처음 펼쳤다가, 11페이지쯤에서 책을 덮어버렸으니까요. 이 글은 그 충격의 기록입니다.역사적 배경: 109개의 사라진 마을이 소설을 제대로 읽으려면 먼저 '제주 4·3 사건'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벌어진 이 비극은, 해안선에서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역 주민들을 모두 '빨갱이'로 간주하고 학살한 국가 폭력입니다. 그 결과 제주도에서만 무려 109개의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제주공항 활주로 아래에서 발굴된 유골만 3,829구에 달합니다. 제주도 공항 부지가 가.. 2026. 6. 4.
시지프 신화 (부조리, 반항, 무상성)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이해한 척을 했습니다. 비교문학 수업에서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원전으로 분석해야 했는데, 강의 노트는 빽빽하게 채웠지만 마음속엔 물음표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물음표들이 오히려 저를 살게 해주었습니다.부조리,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여러분은 열심히 살았는데도 보상이 없었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대학원 과정에서 끝없이 쌓이는 학업 압박과 성취 경쟁 속에서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지하철에서 멍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다 무슨 의미지?" 카뮈는 그 순간을 "무대 장치가 문득 붕괴되는 일"이라고 표현했는데, 제가 경험한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카뮈가 말하는 부조리(absurdity)란, 의미를 갈망하는 인간.. 2026.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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