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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각자도생, 이타심, 연대) 타인을 도우면 손해라고 정말 믿으십니까? 저는 한때 그렇게 믿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스물다섯, 공유 주택 현장에서 청년들의 날것 그대로의 삶을 기록하면서도 정작 속으로는 타인을 잠재적 경쟁자로만 바라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황폐한 시간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 바로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습니다.각자도생의 논리가 깨지는 순간저는 당시 청년 주거 협동조합의 공동체 아카이버로 활동하면서 연대 서사의 가이드라인을 구축하는 작업을 맡고 있었습니다. 아카이브(archive)란 공동체의 기억과 가치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연대를 기록해야 하는 사람이 정작 마음속으로는 연대를 불신하고 있었습니다. 나 하나 챙기기도 버거운 세상에서 타인과 무언가를 나눈.. 2026. 7. 9.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서사 구조, 실존적 구원, 다성적) 재난으로 죽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일까요? 손턴 와일더의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저는 스물다섯에 이 책을 펼쳤다가, 제가 쌓아올린 '통제의 문법'이 산산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우연인가 섭리인가 — 서사 구조가 던지는 질문1714년 7월 20일, 페루의 산 루이스 레이 다리가 붕괴합니다. 다섯 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마침 현장에 있던 주니퍼 수사는 "왜 하필 저 다섯 사람이었는가"라는 질문을 붙잡고 6년간 자료를 수집해 책을 씁니다. 이것이 소설 전체를 끌어가는 서사의 중심축입니다.소설의 구성은 다성적(Polyphonic)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성적 구조란 단일한 화자나 관점이 아니라 여러 목소리.. 2026. 7. 8.
해석에 반하여 (번아웃, 형식 비평, 예술의 성애학) 솔직히 말하면, 저는 한동안 책을 읽는 목적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스물다섯, 졸업을 코앞에 두고 시각 예술 아카이브 플랫폼에서 이미지 분석 매뉴얼을 집필하던 그 시절, 저는 모든 것에서 의미를 캐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정작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번아웃이 왔을 때 집어든 책영문학과 비교문학을 복수 전공하면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 작품을 작품으로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논문을 쓰든, 에세이를 쓰든, 이미지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든, 모든 결과물에는 반드시 측정 가능한 가치와 심오한 의미가 수반되어야 했습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 강박은 창작 의욕을 갉아먹는 데 정말 탁월했습니다.그 시기에 비평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기 위해 다시 꺼내든 책이 수전 손택.. 2026. 7. 7.
빌러비드 (트라우마, 억압된 기억, 모성의 폭력) 상처를 지우면 정말 사라질까요? 저는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스펙과 성과만이 존재를 증명한다고 여기던 시절, 지우고 싶은 기억은 무의식 깊숙이 밀어 넣는 것이 강함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토니 모리슨의 소설 『빌러비드』는 그 믿음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억압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있는 육체를 입고 되돌아온다는 것을.트라우마가 육체를 입고 귀환하는 방식199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는 뉴욕 타임스가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발표된 소설 전체를 대상으로 작가와 평론가들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했을 때 1위로 선정된 작품입니다(출처: 뉴욕 타임스). 그냥 "좋은 소설"이 아니라, 한 시대의 문학적 가능성을 통틀어 최정점에 놓인 작품.. 2026. 7. 6.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의 불가역성, 상실 서사, 기억의 왜곡) 지나간 것을 다시 붙잡으려다 손만 아팠던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으십니까. 저도 스물다섯, 졸업을 앞두고 그랬습니다. 놓쳐버린 기회들을 머릿속에서 계속 돌려보며 정작 지금 눈앞의 것들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때 줄리언 반스의 마지막 소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다시 펼쳤고, 이 책이 그 강박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시간의 불가역성: 줄리언 반스가 46년 만에 꺼낸 고백일반적으로 노년의 작가가 쓴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면 회고록에 가까운, 다소 무거운 고백 문학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읽어보니 이 책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독자를 흔들었습니다.1946년 영국 레스터에서 태어난 줄리언 반스는 34살에 데뷔해 46년간 소설을 써온 작가입니다. 이 책은 그의 15번째 장편으로, 스스로 "마.. 2026. 7. 5.
감정의 혼란 (결정적 순간, 정동적 카오스, 실존적 각성)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성숙함이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스물다섯, 독립 잡지 에디터로 타인의 내면을 경청하면서도 정작 제 안의 불안과 혼란은 미성숙한 것으로 치부하며 꾹꾹 눌러왔습니다. 그러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감정의 혼란』을 만났고, 그 책이 제가 쌓아온 방어벽을 완전히 허물어 버렸습니다.결정적 순간, 인간을 바꾸는 단 한 번의 충격츠바이크는 인간의 운명이 극적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결정적 순간(Sternstunden)'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합니다. 여기서 결정적 순간이란 단순한 우연이나 계기가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불가역적인 심리적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한번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츠바이크가 문학 세계 .. 2026.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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