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72 군주론 (포르투나, 비르투, 국가이성) 솔직히 말하면, 저는 스물다섯이 되도록 마키아벨리를 단순한 '악의 교사'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문학·비교문학 전공 세미나에서 원전을 직접 펼쳐 든 순간, 제가 그동안 얼마나 피상적인 이미지만 붙들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이 글은 군주론이 왜 단순한 권모술수 매뉴얼이 아닌, 현실 정치의 구조를 해부한 근대 정치학의 출발점인지를 제 경험과 함께 풀어 쓴 기록입니다.포르투나, 통제할 수 없는 힘 앞에서르네상스 정치철학과 근대 서사시의 이데올로기를 다루는 세미나에서 군주론 원전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솔직히 첫 몇 장은 그냥 냉소적인 처세술 모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고 변덕스럽다"는 문장에서 잠깐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음 페이지를 넘겨버렸죠.그런데 발표 준비를 위해 당.. 2026. 6. 10. 혼모노 (진짜의 역설, 무당 서사, 악의 건축) 진짜가 되려고 발버둥칠수록 오히려 가짜가 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는 바로 그 역설적인 질문을 정면으로 들이밉니다. 저는 이 책을 학부 세미나 수업에서 처음 텍스트로 다뤘는데, 솔직히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걸 직감했습니다.진짜의 역설 — 무당 서사가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혼모노(本物)'는 일본어로 '진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어떤 대상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으로도 쓰입니다. 성해나는 이 중의적 단어를 소설 전체의 축으로 삼아, 진짜가 되려는 욕망과 그 욕망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과정을 무당의 세계를 통해 풀어냅니다.소설의 주인공 문수는 무당 경력 30년의 인물입니다. 유명 정치인의 앞날을 봐줄 만큼 영험하.. 2026. 6. 10. 모순 (역주행, 선택, 안진진) 25살이라는 나이가 '결혼 적령기'라고 불리던 시대의 이야기를 2025년에 읽는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미나에서 양귀자의 소설 [모순]을 처음 펼쳤을 때, 저는 오히려 첫 장부터 손을 놓지 못했습니다. 1998년 출간된 이 소설이 2023년부터 역주행을 시작해 2025년 현재 170쇄를 돌파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역주행 소설이 지금도 울리는 이유사실 저도 처음엔 고전 텍스트를 분석하는 학문적 과제로만 접근했습니다. 영문학 및 비교문학 전공 과정의 '근대성 이후의 한국 소설과 주체적 내러티브의 형성 구조 연구' 세미나에서 원전 분석 대상으로 이 소설을 만났거든요. 그런데 강의 노트를 채워 나가다가 어느 순간 학술적 분석이 아니라 제 얘기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솔직.. 2026. 6. 8. 사탄 탱고 (배경과 맥락, 서사 분석, 실존적 의미)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크라스나호르카이 라슬로의 대표작 [사탄 탱고]는 데뷔작임에도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압도적인 묵시록 서사로 평가받습니다. 저도 처음 이 책을 세미나 커리큘럼에서 마주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에 마침표조차 드문 만연체 문장이 이어지는데, 덮고 싶다는 충동과 계속 읽어야겠다는 강박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몰락한 헝가리 집단 농장, 그 배경과 맥락이 소설이 1985년에 출간됐다는 사실은 꽤 중요합니다. 당시 헝가리는 소비에트 연방 체제 아래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있었고, 집단 농장(콜호즈) 방식의 공동 생산 체제가 사실상 붕괴 직전이었습니다. 헝가리는 1945년 소련 점령 이후 집단화 정책을 강제로 시행했지만, 이는 농업 생산성의 급격한.. 2026. 6. 7. 벚꽃동산 (귀족 몰락, 계급 전환, 체호프) 변화의 파도 앞에서 눈을 질끈 감아버린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전공 수업에서 체호프의 희곡 [벚꽃동산]을 원전으로 처음 읽었을 때 그 질문을 정면으로 얻어맞았습니다. 1904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읽고 나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묵직한 잔상을 남깁니다.귀족 몰락: 어린이 방에서 끝내 나오지 못한 사람들[벚꽃동산]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제목만 보고 서정적인 낭만극을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읽어보면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제가 처음 텍스트를 폈을 때도 솔직히 그랬습니다. 아름다운 벚꽃나무들이 도끼 소리와 함께 잘려 나가는 결말은 어떤 낭만과도 거리가 멉니다.작품의 배경은 19세기 말 러시아입니다. 1861년 농노 해방령 이후 러.. 2026. 6. 6. 부활 (도덕적 각성, 계급 구조, 실존적 구원) 누군가 당신에게 "지금 살고 있는 방식이 정말 당신의 선택입니까?"라고 물어온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영문학·비교문학 전공 시절, 이 질문을 톨스토이의 소설 한 권이 먼저 던졌습니다. 당시 저는 제도권 학문의 평가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기준대로 공부하며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부활을 원전으로 읽으면서, 그 믿음이 흔들렸습니다.도덕적 각성, 한 귀족의 뒤늦은 자각톨스토이의 부활은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닙니다. 귀족 청년 네흘류도프가 과거에 자신이 망가뜨린 여인 마슬로바를 법정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고, 그 죄책감이 그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이야기입니다.저는 이 작품을 수업에서 처음 접할 때, 솔직히 말해 네흘류도프의 변화가 과연 진심인가를 의심했습니다. 부유한 귀족이 마음 한 번 먹.. 2026. 6. 5. 이전 1 2 3 4 5 6 7 ··· 12 다음